동북아역사재단, 올해 첫 상고사 토론회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인 고조선의 서쪽 경계를 두고 양쪽이 또다시 격돌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22일 오후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올해 첫 상고사 토론회에서 이후석 숭실대 박사와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은 주제 발표자로 참가해 강단학계와 재야학계의 기존 입장을 거듭 밝혔다.
'고조선의 서북경계는 어디까지인가: 동호·흉노와의 관계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열린 이번 토론회는 고조선과 연나라뿐만 아니라 이들 나라의 북쪽에 있었던 세력도 함께 살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러나 이날도 양쪽이 첨예하게 맞붙은 쟁점은 '고조선의 서쪽 경계가 어디였는가'였다.
이 박사는 고고학 유물을 바탕으로 고조선과 연나라, 동호(東胡, 춘추시대부터 한나라까지 몽골 지역에서 활동한 유목민족)의 관계를 살폈다.
그는 "고고학적 물질문화를 검토하면 동호는 모두 북방계통 종족에 해당하며 (고조선과) 문화적인 성향 역시 다르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어 "고조선은 춘추 시기(기원전 770년∼기원전 403년) 요녕(遼寧, 랴오닝) 지역에 중심지를 두었다고 생각된다"며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이르면 연나라와 치열하게 경쟁하다 전쟁에서 패해 요동 지역의 첸산(千山)산맥 이남으로 중심지를 이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요하(遼河, 랴오닝강) 인근에서 세력을 키운 고조선이 연나라에 밀려 요하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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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심 원장은 고조선 시대의 요하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서쪽에 있는 장소를 지칭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중국에서 청나라 때 편찬된 총서인 '사고전서'(四庫全書)를 비롯한 여러 문헌을 근거로 당시의 요하는 오늘날 베이징 서남쪽에 있는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의 '역수'(易水)라고 주장했다.
심 원장은 "요동과 요서가 현재의 요하가 아니라 허베이성 역수를 기준으로 설치된 것이라면 요동군 동쪽에 있었던 낙랑군도 당연히 대동강 유역이 아니라 친황다오(秦皇島)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제 발표 이후에는 '한국과 세계의 한국역사 교육을 바로잡는 사람들의 모임'의 김종서 박사와 박준형 연세대 박사가 각각 재야학계와 강단학계의 토론자로 나서서 상대 발표자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해에도 고조선의 마지막 도읍인 왕검성, 고조선과 연나라의 경계인 만번한(滿潘汗) 등을 주제로 네 차례 토론회를 열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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