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서만 전전…아이들·반려동물에 미안해요"
차량용 필터 창문에 설치…대선주자에게 미세먼지 공약 요구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강종훈 김은경 기자 = 3세 아들을 둔 워킹맘 김 모(여·35) 씨의 생활은 최근 미세먼지 때문에 완전히 바뀌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집 주변 성북천에서 조깅을 즐겼으나, 요즈음에는 미세먼지가 많은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워 헬스장을 다닌다.
특히 아이와 밖에서 노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대부분 집에서 놀아주거나 실내 키즈카페를 이용한다. 심지어 집 바로 옆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줄 때도 미세먼지 걱정에 차로 움직일 때도 있다.
밖에 잘 나가지 않으니 인터넷쇼핑이나 홈쇼핑에 집중하는 경우도 늘어 집에 쓸데없는 물건만 쌓여간다.
약국에서 마스크와 '아이봉(안구 세척제)'을 대량 구매해 항상 집에 갖춰두는 것도 '필수 장보기'가 됐다. 구강 세척제 '가XX'도 여러 통 사다 놨다. 미세먼지 탓인지 남편이 항상 입 안이 껄끄럽다며 구강 세척제를 찾기 때문이다.
집안 공기청정기는 늘 최대 속도로 가동하고, 민원을 넣어 구립 육아지원센터에도 공기청정기를 두게 했다.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며 '나쁨'이면 '밖에 어떻게 나가나', '보통'이면 '언제 나쁨으로 변할까', 거의 매일 아침을 걱정으로 시작하는 일이 반복된다.
김 씨는 "요즈음 '공기 질 때문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이 모(여·31) 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비염이 갈수록 심해져 집에 공기청정기 2대, 공기측정기 1대를 설치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세먼지 수치를 알려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부터 확인하고, 집안 미세먼지 수준도 때마다 확인한다.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가급적 외출하지 않고, 환기가 어려우니 집안에서 요리하는 일도 꺼린다.
최근 며칠 미세먼지가 심했을 때 렌즈를 꼈더니 결막염이 생겨 아직도 고생하고 있다.
이 씨는 "공기청정기가 없는 사무실에서 장시간 근무하면 콧물이 흘러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며 "미세먼지 때문에 신경 쓸 게 너무 많아 눈물이 날 정도"라고 전했다.
아이와 반려동물이 있는 집은 챙길 것이 더 많다.
직장인 이 모(39) 씨는 만 3세 딸이 부쩍 감기에 자주 걸리는 이유가 미세먼지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방마다 공기청정기를 뒀고, 차 안에도 공기청정기를 설치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다.
이 씨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 주변 공기의 질을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도 구매했다"며 "측정 결과가 나쁘면 최대한 빨리 실내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는 정 모(31·여) 씨는 "강아지를 이틀에 한 번 산책시켜야 하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산책시키기 어렵다"며 "쇼핑몰이나 백화점, 마트 등은 대부분 반려견을 받지 않으니 개가 갈 곳이 없다. 개들이 스트레스를 받아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답답해했다.
미세먼지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각종 자구책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지난해 5월 개설돼 현재 회원이 3만5천여 명에 달하는 네이버 카페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에는 최근 몇 달간 '베란다에 차량용 필터를 설치했다'는 글이 수십 개 올라왔다.
환기는 해야겠는데, 미세먼지가 걱정인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차량용 필터 여러 개를 창문에 붙여 미세먼지를 막는 것이다.
카페 회원들은 성능 좋은 필터 브랜드와 필터를 창문에 고정하는 방법 등 각자의 비결을 공유하고 있다.
심지어 한 달 반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도 미세먼지 문제는 서민 표심을 좌우할 중요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21∼22일 국민 참여 공약 문자를 받은 결과, 미세먼지 관련 국민 참여 공약은 1천700건이 넘었다.
문 후보는 "미세먼지도 걷어내고 여러분의 걱정도 덜어드릴 수 있도록 좋은 방법 찾아보겠다"고 답했다.
kamj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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