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의식 없었고 사고예방 책임만 인정"…검찰 "이해 안된다"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지난해 7월 부산 해운대에서 23명의 사상자를 낸 '광란의 질주' 가해 차량 운전자 김모(53) 씨가 24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금고 5년형을 선고받았다.
금고형은 교도소에서 복역하지만 강제 노역을 하지 않는 점에서 징역형과 구분된다. 본인이 원하면 강제 노역을 할 수 있다.
3명이 숨지고 20명이 다치는 참혹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법원이 금고형을 선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 쟁점은 사고 당시 가해 차량 운전자의 의식 여부다. 의식 여부를 판단하는 문제에서 1심 법원은 '의식이 없어 책임능력이 없다'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김씨의 변호인은 "김씨는 자동차 종합보험과 운전자보험에 가입되어 1차 접촉사고 때 의식이 있었다면 도주할 이유가 없었다"며 "뇌전증(간질) 환자인 김씨는 당시 복합부분발작이 발생했고 의식이 없는 책임 무능력 상태에서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이어졌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주장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단독 권기철 부장판사는 의식이 있었다는 전제하에 제기된 주위적 공소사실(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도로교통법위반(사고후미조치),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치상))에 관해 무죄로 판단했다.
권 부장판사는 "사고 당시 의식이 없는 사람의 운전행위로 보기 어렵고 뇌전증 전문의가 '의식이 상실된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정만 보면 의심할 여지가 있지만 제한속도를 시속 78km 상당 초과한 시속 138km로 진행하면서 충돌한 운전행위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뇌전증 환자들이 자전거 타기나 운전행위 등 기존에 계속하던 행동 도중 갑자기 복합부분발작이 시작되면 잠시 앞을 응시하다가 계속하던 기계적인 행위를 지속하는 행태를 보인다'는 캐나다 뇌전증 협회 논문도 있다"며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김씨에게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무죄로 판단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가 가벼운 접촉사고(1차 사고) 이후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무모하게 도주할 이유가 없다는 점도 무죄 판단 이유 중 하나다.
"사고 당시 운전자의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상실되거나 손상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는 공주치료감호소와 뇌전증 전문의의 의학적 소견 등을 내세워 김씨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한 검찰의견은 배척됐다.
다음 쟁점은 뇌전증으로 의식을 잃고 교통사고를 일으킬 것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운전을 한 것인지다.
검찰은 설령 운전자가 의식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뇌전증 처방약을 먹지 않으면 의식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운전을 해 대형 인명피해가 난 중대 교통사고를 냈다고 예비적 공소사실을 제기했다.
운전면허 갱신 때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 전문의 등의 판단에 따라 면허 갱신을 받아야 하지만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업무상 주의의무를 모두 위반했다며 금고 7년 6개월을 구형했다.
반면 김씨의 변호인은 "뇌전증 치료제 복용 이후 8개월 이상 교통사고를 낸 적이 없어 꾸준히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운전 중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법원은 검찰의 예비적 공소사실(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치상))에 관해서는 유죄로 판단해 금고 5년을 선고했다.
동부지원 관계자는 "현행법(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징역형을 선고할 수 없고 과실만 인정해 금고형만 선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법원에서 전문감정기관과 뇌전증 전문의의 의학적 소견을 배제하고 예비적 공소사실만 인용한 것은 이해가 안된다"며 "판결문을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7월 31일 오후 5시 해운대 신도시에서 1차 접촉사고를 낸 뒤 그대로 도주해 교차로 3곳의 신호를 무시한 채 차선을 변경하며 시속 100㎞ 이상의 속력으로 질주한 끝에 3명이 숨지고 20명이 다치는 7중 추돌사고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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