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 관영방송이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젊은 시절 밀 100㎏을 메고 5㎞ 산길을 갔다는 일화를 전하면서 우상화 논란이 일고 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지난 19일부터 문화대혁명 당시 시 주석의 하방(下放·지식청년을 노동 현장으로 보냄) 생활을 다룬 3부작 다큐멘터리 '초심(初心)'을 전국에 방영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 방영은 올 가을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9대)를 앞두고 '시진핑 사상'을 당장과 헌법에 넣고 시진핑 1인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여론전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큐멘터리는 문화대혁명 시기 부친인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가 박해를 받을 당시 16세의 시 주석이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시 옌촨(延川)현의 산골 마을인 량자허(梁家河)촌과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 푸젠(福建)성 닝더(寧德)에서 상산하향(上山下鄕)에 참여할 때를 다루고 있다.
이중 문제가 된 부분은 1부 량자허편에서 시 주석이 당시의 고생담을 전하며 "200근(100㎏)의 밀자루를 들고 어깨를 바꿔 메지도 않은 채 십리(5㎞)의 산길을 갔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에 대해 소셜미디어 등에서 석연찮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프랑스 RFI 중문판은 전했다. "타이탄이나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농민들이 그렇게 힘들게 짐을 메고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미국의 소리(VOA)는 시 주석의 이야기가 미명관찰(未名觀察)이라는 인터넷 토론 사이트에서 논쟁 주제가 됐다며 "황토고원의 농민은 그렇게 짐을 메고 멀리 갈 필요가 없다. 가더라도 2, 3리(1∼1.5㎞) 길이면 충분하다. (인민)공사에 곡식을 보내러갈 땐 반드시 짐을 돌려메거나 중간에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하방 경험자의 전언을 전했다.
시 주석의 이 일화가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처음 소개된 것은 아니다. 시 주석은 이미 취임 전부터 하방 경험을 전하며 "병이 생긴 때를 빼면 거의 하루도 쉬지 못했다. 비 내리고 바람불면 동굴 속에서 풀을 베고 누웠고 저녁에는 가축을 보러갔으며 농민들을 따라 양을 치러도 갔다. 그때엔 200근의 밀자루를 들고 십리 산길을 어깨를 바꿔 메지도 않고 갔던 적이 있을 정도로 무슨 일이나 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0근 밀과 10리 산길' 일화가 돌연 관심을 끄는 것은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 주석의 권력이 마오쩌둥(毛澤東)에 비견될 정도로 강화되면서 우상화 작업이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중국 권력자의 신격화는 마오쩌둥 시대에 성행하다 문혁 기간에 중단됐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 출범후 시진핑 배지가 등장한 것을 비롯해 우상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데 중국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공산당 당장에 시진핑 사상이 포함되면 시 주석은 마오쩌둥, 덩샤오핑에 이어 본인 이름이 들어간 지도이념을 가지는 3번째 지도자가 되며 마오쩌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사적 위상을 갖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RFI는 이와 함께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지난 2일 '인민대표 시진핑' 제하의 기사에서 시 주석이 량자허촌에 있을 당시 모습이라며 공개한 흑백사진의 남성이 시 주석이 아닐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인민일보는 당시 시 주석이 개인적 고난을 이겨낸 강력한 정치인이자 보통 중국인의 염원을 이해하는 정치인이라고 찬양하면서 옌촨현 선전부가 제공했다는 이 사진을 실었다.
하지만 웨이신(微信·위챗) 댓글에선 사진속의 남성이 시 주석이 아니라 시 주석과 같은 시기 옌안에서 하방생활을 했던 베이징 출신의 지식청년 팡윈(龐운)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팡윈과 중학 시절 동창이라고 자처한 이 네티즌은 팡윈이 2002년 공저로 출간한 하방 생활 기록서에도 이 사진이 나와있다면서 정작 이 사진의 주인공은 감히 반박하지도, 진상을 밝히지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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