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동거하고 선물도 받고"…17세기 선비의 함경도 유배 일기

입력 2017-03-26 11:13  

"가족 동거하고 선물도 받고"…17세기 선비의 함경도 유배 일기

문화재청, 만해기념관서 '북정록' 찾아…"이제껏 알던 유배 모습과 달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시대 중기 선비인 이필익(1636∼1698)이 함경도 안변에서의 유배생활을 기록한 일기가 발견됐다.

2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경기도와 인천 지역에서 진행한 '조선시대 개인 일기 학술조사연구'를 통해 경기도 광주 만해기념관에서 이필익이 쓴 것으로 보이는 일기 '북정록'(北征錄)을 찾았다.

가로 22.8㎝, 세로 32.3㎝ 크기의 책인 북정록은 오늘날 논산 일대인 충청도 이산(尼山)에 거주하던 이필익이 숙종 원년(1674) 유배지로 떠날 때부터 3년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숙종 5년(1679) 돌아오기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북정록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북찬록'(北竄錄)과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다만 1731년 김치후가 쓴 서문이 붙어 있는 북찬록은 이필익의 원본을 그의 손자 대에 필사한 것으로, 북정록이 그 원본으로 추정된다.

북정록을 살펴보고 해제를 쓴 이근호 명지대 연구교수는 "조선시대에는 문서를 필사하다 보니 다양한 이본(異本)이 만들어지기도 했다"며 "북정록과 북찬록의 차이를 명확하게 파악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교수는 "북정록에 묘사된 이필익의 삶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유배 모습과 달라 학술적 가치가 있다"며 "이필익은 법적으로 정해진 유배형의 규정을 상당 부분 지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북정록에 따르면 이필익이 유배지에 도착하고 3개월이 지난 1675년 2월 처와 아들이 말 5필, 노비 6명을 이끌고 찾아왔다. 그는 귀양지에서 가족과의 동거를 금하는 법령을 어기고 집을 지어 식솔과 함께 살았다.

생계는 안변부사가 지급해준 땅에서 농사를 지어 해결했다. 여기서 난 농작물은 아홉 식구가 먹기에 부족하지 않은 정도였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필익이 유배지를 관할하는 안변부뿐만 아니라 각 군현의 수령, 서원과 향교, 유림 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안변부사는 이필익이 도착한 다음 달부터 술, 기름, 달력, 콩, 반찬, 약물을 제공하는 한편 조정의 소식을 전했다.

또 고향인 충청도와 경기도의 서원과 향교에서는 선비의 필수품인 지필묵(紙筆墨)을 보내왔다. 전라감사, 덕원부사, 함흥판관 등은 곡물과 어물 등 먹을거리와 옷감을 선물로 전했다.

이필익이 유배형을 사는 죄인임에도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인인 그는 17세기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 송시열(1607∼1689) 문하에서 수학했고, 1674년에는 송시열을 공격한 남인 곽래건의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의 소두(疏頭, 상소문에 맨 먼저 이름을 적은 사람)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해 남인이 반격에 나서 송시열은 파직됐고, 이필익은 유배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이필익이 서인을 대표해 처벌을 받은 것처럼 인식돼 뜻을 같이하는 서인들이 십시일반 원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조선시대 개인 일기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문화유산과 사라진 생활 관습의 단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며 "2015년 대구·경북부터 시작한 조사를 통해 미공개 일기를 발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천과 경기도의 일기는 향촌의 생활상보다는 사신 행차나 병자호란을 기록한 일기가 많았다"며 "올해는 서울 지역에서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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