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수은에 유리", "밑빠진 독 물붓기·혈세로 도박" 비판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를 들고 있는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계 기관투자자들이 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의 채무조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 등 '큰 손'들은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이들의 입장이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 등의 내부 검토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대우조선 회사채 수백억원을 보유한 한 시중 자산운용사의 고위 관계자는 28일 "현재로써는 채무조정안의 변경을 요구하거나 반대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조정안"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다른 운용사의 관계자도 "투자금을 위탁한 수익자와 협의할 부분이 남아 있고 주요 수익자인 연기금의 입장이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당국의 채무조정안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지난 23일 선(先) 채무조정, 후(後) 추가 유동성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자율적 구조조정 방안을 우선 추진하는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은 내달 17∼18일 5회에 걸쳐 열리는 대우조선해양[042660] 사채권자 집회(회사채 1조3천500억원·기업어음(CP) 2천억원)에서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를 연장하는 채무재조정을 마무리한 뒤 신규 자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계는 전체의 22%에 해당하는 3천억원 가량의 대우조선 회사채를 들고 있다.
연기금을 제외하고 주요 금융기관별로 보유액을 보면 1월 말 기준 KB자산운용 600억원, 수협상호금융 587억원, 농협상호금융본부 377억원, 하나금융투자와 교보생명이 각각 300억원, 현대해상과 한국증권금융이 각각 200억원, 유안타증권 149억원, 동부생명 100억원, 알파에셋자산운용 90억원, 이베스트투자증권 83억원 등으로 파악됐다.
연기금 중에선 국민연금이 3천900억원, 우정사업본부 1천800억원, 사학연금 1천억원, 시중은행 600억원 등 기관투자자 보유 물량은 전체의 4분의 3을 넘는다.
사채권자집회에서 채무재조정안이 수용되려면 총발행채권액 3분의 1 이상을 가진 채권자들이 참석해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하고 발행 채권 총액 3분의 1 이상의 찬성 요건도 충족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금융투자업계가 반대하더라도 국민연금 등 나머지 기관투자자가 찬성한다면 채무조정안은 사채권자집회를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조정안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강해 이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 구조조정안은 망해 가는 회사를 정치적 논리로 세금을 쏟아부어 지금보다 더 나은 값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살리겠다는 게 핵심"이라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논리대로 조선업황이 언젠가 되살아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면서 "산은과 금융위원회가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책임은 뒤로하고 혈세로 도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실제 지난해 6월에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재무상태 점검을 소홀히 해 대규모 부실 사태를 사전에 막을 기회를 놓쳤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감사원은 산업은행이 출자회사에 대한 재무분석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도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상태를 점검하지 않아 기업회생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또 사업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채 '묻지마 투자'를 해 피해를 키웠고, 이 와중에 수백억원을 격려금으로 지급하는 도덕적 해이도 드러냈다고 질타했다.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최근 회계법인 딜로이트 안진에 대해 2010년에서 2015년까지 대우조선해양의 외부감사를 맡아 분식회계를 조직적으로 묵인·방조·지시했다며 1년간 신규감사 업무정지 조치를 하기도 했다.
임정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는 결국 국내 조선산업을 전략적으로 '빅2' 체제로 개편할 목적으로 대우조선 구조조정 이후 내년부터 매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채무재조정안에 동의하더라도 만기 연장된 원금의 3년 뒤 상환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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