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우리 것"…훈민정음 해례 간송본 원소장처 논란 심화

입력 2017-03-28 11:22  

"원래 우리 것"…훈민정음 해례 간송본 원소장처 논란 심화

"우리 집안 것 가져가 매도" vs "세종 때 하사받아 보관"




(안동=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국보 제70호) 원래 소장처를 놓고 생긴 논란이 심화하고 있다.

간송본은 안동 서예가 진성이씨 이용준이 1939년을 전후해 간송 전형필에게 거금을 받고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광산김씨 긍구당(肯構堂) 14대 종손 김대중(84)씨는 28일 안동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해례본 간송본은 1940년 초까지 안동시 와룡면 가야리 긍구당이 원래 소장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월 진성이씨 대종회가 안동시청에서 한 기자회견 내용을 반박한 것이다.

당시 진성이씨 대종회는 "해례본 원소장처는 진성이씨 두루(周村·두루) 종택이다"며 "일부 학계에서 이용준이 처가인 광산김씨 긍구당 고택에서 해례본을 몰래 가져온 뒤 팔아먹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성이씨 모든 가문 역사를 부정·왜곡하고 명예와 자부심을 훼손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긍구당 측은 이날 회견에서 "해례본 간송본 원소장처는 광산김씨 긍구당 고택인데 이용준이 처가에서 책을 가져온 뒤 긍구당 장서인(藏書印)이 찍혀 있는 표지 등을 찢어 훼손한 뒤 매도했다"며 강조했다.

또 "진성이씨 측 선조인 이정(李禎)이 세종대왕에게서 직접 해례본을 하사받았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이정이 최윤덕 장군 막료로 여진 정벌에 참여해 이룬 군공(軍功)으로 논공행상에서 판관 벼슬을 받고 13년이나 지나 훈민정음이 반포된 만큼 진성이씨 주장은 맞지 않다"고 했다.

이어 "연산군 언문탄압 때 앞 2장을 찢은 뒤 보관했다는 진성이씨 측 설명도 해례본 대부분이 한자(漢字)로 되어있는 데다 한글 탄압을 피해 한자가 쓰인 책장을 찢은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해례본은 한자로 훈민정음 글자를 지은 뜻과 사용법을 풀이한 것으로 예의(例義)와 해례(解例), 정인지 서문 3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간송 전형필은 6·25 때 오동나무 상자에 해례본 1권만 넣고 피난을 떠났고 잘 때도 베고 자는 등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leek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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