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려인 위한 한국어 교재 펴낸 정막래 계명대 교수

입력 2017-03-29 09:17  

[인터뷰] 고려인 위한 한국어 교재 펴낸 정막래 계명대 교수

"우리말 못해서 힘겹게 사는 국내 고려인에게 도움 주고 싶어"

고려인 3세 시집도 번역…서울·대구 오가며 다시 박사에 도전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옛 소련 지역의 한인을 일컫는 고려인은 근대 이후 150여 년간 이중, 삼중의 디아스포라(이산)를 겪었다. 가난을 견디다 못해, 혹은 나라를 되찾으려고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정착했다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태워져 중앙아시아로 끌려갔다. 이들의 후손은 잘산다는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았지만 여전히 고생스러운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만강을 건너 왼쪽으로 간 사람은 조선족이 되고 오른쪽으로 향한 사람은 고려인이 됐대요. 한국어 사용을 허락한 중국의 마오쩌둥과 달리 소련의 스탈린은 러시아어만 쓰도록 해 고려인은 우리말을 모두 잊어버렸죠. 우리나라로 귀환한 고려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단순 노동에만 종사하는 바람에 조선족보다 훨씬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한국어 교재를 펴내게 됐습니다."

지난달 '고려인을 위한 한국어'를 출간한 정막래(51) 계명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는 28일 서울 종각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나 "고려인들이 이 책으로 우리말을 하루빨리 익혀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기 바란다"는 기대를 털어놓았다.

"지난 겨울방학 때 박사논문과 연구서적을 쓰기 위해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머물렀다가 제 연구보다는 이분들을 돕는 게 더 급하다고 느껴 서둘러 교재를 펴냈습니다. 러시아어권 국가에서 쓰는 한국어 교재는 있어도 4만여 명에 이르는 국내 거주 고려인을 위한 교재는 없었거든요. 저도 러시아어 교재는 수십 권 집필했지만 한국어 교재는 처음 써봤죠. 고려인들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공장, 식당, 출입국사무소 등에서 자주 쓰는 단어와 문장을 중심으로 꾸몄습니다. 한국 이주를 준비하는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 고려인들에게도 유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 교수는 고려인 3세 김블라디미르(61) 씨가 러시아어로 쓴 시 35편을 번역해 엮은 시집 '광주에 내린 첫눈'도 지난달 선보였다. 김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지내다가 6년 전 정년퇴임하고 가족과 함께 광주로 이주해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 교수님의 시를 읽으면 '짠하다'는 말의 뜻을 실감하게 됩니다. 평생 해보지 않던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따뜻한 인간미와 때 묻지 않은 정서를 잃지 않고 있거든요. 그분의 시 세계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그분의 눈을 통해 우리의 모습도 돌아보고자 우리말로 옮길 마음을 먹었죠. 시집이 나오니 고려인마을 주민도 모두 기뻐하더군요. 우리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지금까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고국 동포의 시선을 느끼고 있다가 마음이 뿌듯해지고 어깨가 으쓱해진 거죠."


김 씨는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시를 한 편씩 써서 정 교수에게 보내온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2집을 펴낼 수도 있겠지만 정 교수의 시간이 빠듯해 쉽지 않은 형편이다. 또 시 번역이라는 게 뜻만 통하면 되는 게 아니라 운율을 살려야 하므로 시일이 적잖이 소요된다고 한다.

5자매 딸부잣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여고 시절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매력에 빠져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에 입학하고 대학원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했다. 1991년 러시아 국비유학생 1호로 선발돼 1996년 모스크바국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이듬해 계명대 교수로 임용됐다.

100권을 헤아리는 저서와 역서를 내고 제자도 열심히 가르쳐 남부럽지 않은 취업률을 기록했지만 각 대학의 학과가 실용학문 위주로 재편되고 러시아의 위상도 차츰 낮아져 위기감을 느끼던 중 정 교수는 대학 시절의 은사인 임영상 한국외대 지식콘텐츠학부 겸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를 만나 박사과정을 또다시 밟기로 했다.

"대학 1학년 때 사학과 교수이던 임 교수님께 러시아사 강의를 들었죠. 2년 전 특강차 대구에 들렀다가 저를 만난 교수님이 '러시아어문학과가 살아 있어요?'라고 묻는 거예요. '아직까지는요'라고 대답해놓고 저희 대학 학과도 문화콘텐츠 관련 학과로 바뀔 것에 대비해 공부를 더하기로 했죠. 제가 학부를 다닐 때 임 교수님은 4년 내내 자신의 월급을 떼어 제게 장학금을 주셨는데, 이번에는 지도교수로 모시며 도움을 또 받게 됐죠. 1주일에 나흘씩 대구에서 강의하며 서울로 통학하는 강행군을 세 학기째 하고 있어 솔직히 체력이 달리는 걸 느낍니다. 그래도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치가 공부'라는 말처럼 교수님께 가르침을 받고 새로운 학문을 익힌다는 게 즐겁고 보람찹니다."

정 교수는 현재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들으며 광주 고려인마을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집필하고 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하는 임 교수가 '나랑 같이 졸업합시다'라고 한 말을 지키려면 게으름을 피울 틈이 없다고 한다. 그에 앞서 내달 초에는 고려인 한글신문 '선봉'을 통해 연해주 고려인의 생활상과 문화예술을 살펴본 연구서 두 권을 내놓는다. 광주에 사는 고려인들과 이들의 선조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광주 고려인마을을 거닐다'란 책도 집필할 계획이다.

올해는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이주당한 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정 교수는 김블라디미르 씨와 함께 7월 23일부터 8월 4일까지 국제한민족재단이 주관하는 '극동 시베리아 실크로드 오디세이-회상열차'에 동승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까지 6천500㎞ 강제이주의 여정을 따라갈 예정이다.

광주 고려인마을의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회' 상임집행위원도 맡은 그는 CIS 각 지역 고려인협회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힘쓸 생각이며, 2003년 러시아 고려인 학자들이 편찬한 1천400쪽 분량의 '고려인 백과사전'을 올해 안으로 번역하겠다는 목표도 세워놓았다.

"고려인들은 근현대사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독립운동에도 헌신했습니다. 해외 거주 고려인들에게는 경제적 안정과 한국어 학습 등을 도우면서도 정작 모국을 찾아온 고려인들에게는 이렇다 할 지원이 없습니다. 재외동포법에도 재외동포의 기준을 '부모 또는 조부모 중 한 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로 한정하고 있어 4세 이후는 재외동포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국가적 차원의 제도 개선과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국제적으로 자국중심주의가 강화되고 국내의 경기침체가 장기화함에 따라 조선족이나 고려인을 얕보거나 이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진 것 같다"고 우려를 표시하자 정 교수는 '광주에 내린 첫눈'에 실린 '추석'의 한 구절을 들려주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나는 '외국인'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듣거나 알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고려인, 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도, 양심적으로도, 혈통으로도 그렇습니다."


hee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