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 소설집 '고발' 출간 기념해 국제 콘퍼런스 개최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흔히 '반디' 선생을 '북한의 솔제니친'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전체주의 소련 치하의 반디는 상상할 수 있지만 북한의 솔제니친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남정욱 작가는 29일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국제 문학·인권 콘퍼런스'에서 북한에 거주하는 반체제작가로 알려진 '반디'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북한인권운동단체 행복한통일로 등이 주최한 이번 콘퍼런스는 반디의 소설집 '고발' 출간을 기념해 마련됐다.
소설집 '고발'은 2014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일본·포르투갈·영국·미국·캐나다·독일 등 21개국에 판권이 수출돼 번역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4년 조갑제닷컴이 처음 출간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영어판이 지난해 영국 작가단체의 번역상을 수상하고 지난달 다산북스가 개정판을 펴내면서 주목받았다.
소설집에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할 당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단편 7편이 실렸다.
2013년 원고를 입수한 행복한통일로는 반디가 '평양 인근에 거주하는 1950년생의 남성 작가'라고 설명했지만 생존 여부를 포함한 정체가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았다.
콘퍼런스에는 인권단체 '국경 없는 인권'의 윌리 포트레 회장과 피에르 리굴로 프랑스 사회역사연구소장, 미국의 출판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 등 미국·유럽 출판 관계자와 북한인권 운동가 등이 참석했다. 또 노재봉 전 국무총리,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이 함께 자리했다.
남 작가는 반디를 솔제니친과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솔제니친은 적어도 자유롭게 글을 쓰고 그 글 안에서 우회적으로 체제 비판을 할 수 있었다"며 "자유롭게 글을 쓰고 체제 비판까지 할 수 있다면 그곳은 이미 북한이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반디 작품의 문학성도 강조했다. 그는 "단지 체제를 비판했다고 해서, 그것을 글로 옮겼다 해서 끝이 아니다. 문학적인 완성도를 동반하지 못하면 그것은 단지 문서로 된 고발일 뿐"이라며 "반디의 소설은 이 지점에서 단연 빛난다"고 평했다.
또 그는 "반디의 소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인권과 자유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에 완벽하게 소외된 북한 동포들에게 물리적인 힘보다 더 큰 희망과 격려로 다가갈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제를 맡은 리굴로 프랑스 사회역사연구소장은 반디의 소설에 대해 "북한에서의 일상생활이 정밀하게 묘사돼 있다"며 "이 단편집은 우리에게 희생자들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들의 권력으로부터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경찰이나 정당 공무원들이 모든 국민을 다스리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 밖에서 이 책의 출판을 장려하고 옹호해야 한다"며 "독자로 하여금 북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방법과 전체주의 정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번역된 버전을 보더라도 이 책이 얼마나 아름답게 쓰였는지 알 수 있다"며 "작가가 회상과 꿈, 상징을 사용하는 방법과 교훈적인 무거움을 피하려는 방법들이 작가가 훌륭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설명했다.
이날 콘퍼런스에 참석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반디의 '고발'에 묘사된 모습이 제가 북한에서 겪었던 일들과 같았다"며 "책에 묘사된 북한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 책을 다 읽은 후 집 밖을 나서서 걸어가는데 제가 서울 시내를 걷는지 평양 시내를 걷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주민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 북한의 실상을 널리 알리고 반디의 독자들을 만들어가야 한다"며 "우리는 반디의 비판·투쟁·저항정신을 따라야 한다"고 호소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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