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랑'부터 '조용한 후계자'까지…중화권 재벌2세가 사는 법

입력 2017-03-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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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신랑'부터 '조용한 후계자'까지…중화권 재벌2세가 사는 법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중국본토의 왕젠린(王健林), 대만의 궈타이밍(郭台銘), 홍콩의 리카싱(李嘉誠).

저마다의 개성으로 만금의 부를 이룬 중화권 거부들이다. 천문학적 재산을 가진 거부를 아버지로 둔 이들의 장남들은 어떤 생활을 할까. 아버지 덕에 그야말로 돈을 물쓰듯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버지 밑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기업을 일군 사람도 있다. 공통점은 모두 사업에 일가견이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후광 덕에 사업에 성공하고 있다는 시선이 있지만 어쨌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간의 관심을 끈다.

29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아시아의 대부호인 중국 본토 재벌 왕젠린의 장남 왕쓰충(王思?.29)은 가라오케에서 하루 저녁에 250만 위안(약 4억 원)을 쓰는 호방하다 못해 방탕하기까지 한 사람이다. 연말·연시에는 몰디브의 고급 호텔을 통째로 빌려 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의 애견은 아이폰7을 7대나 갖고 있다. 돈이 떨어지면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조른다.

스스로 "나의 최대 강점은 돈이 있다는 것"이라고 호언한다. 부동산재벌 완다(萬達)그룹 회장인 아버지 왕젠린과 중국 당국은 그를 다루는 데 애를 먹지만 일반 중국인들은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와 결혼만 하면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은 없을 거라는 의미에서 "국민 신랑"으로도 불리는 그는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팔로워가 2천200만 명이 넘는 인기인이기도 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지냈다. 초등학교는 싱가포르, 중학교부터 대학까지는 영국에서 공부했다. 2012년 귀국하자 아버지 젠린 회장은 외아들을 완다그룹에 입사시키려 했지만, 본인은 완다그룹의 사업에는 일절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속을 끓이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투자회사인 "보사(普思)투자"를 설립하고 5억 위안(약 810억 원)을 건네줬다. "사업을 잘 못 하면 완다에 와서 일한다"는 조건이었다. 젠린은 내심 아들이 곧바로 사업에 실패할 것이라고 우습게 생각했지만 쓰충이 투자한 회사 중 이미 5개가 증시에 상장되는 등 그의 투자사업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쓰충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라이브 동영상 사이트인 통칭 "판다TV"다. 판다TV는 "미녀 중계"라는 콘텐츠가 간판 상품이다. 일반 여성이 등장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외에 식사 등의 생활장면을 중계한다. 시청자는 마음에 드는 여성이 나올 경우 가상통화로 약 1천 위안(16만2천 원) 상당의 아이템을 산다. 금액에 따라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판매한 아이템의 일부가 출연한 여성의 수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부 여성은 시청자를 늘리기 위해 옷을 벗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작년 4월 판다TV를 비롯한 동종 동영상 중계사이트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여 출연여성의 실명을 등록하게 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벌금도 물렸다. 하지만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당사자를 구속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돈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쓰충은 완다의 이사로 이름은 올리고 있지만, 업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은 나 같은 생활을 할 생각이 없고 완다의 사업도 이어받고 싶지 않는 것 같다"고 탄식한 끝에 최근 아들 대신 사업을 이어받을 후계자 물색을 시작했다고 한다.

타이베이(臺北) 중심부에 있는 패션빌딩 "삼창(三創)문화원구". 가전제품과 게임, 최첨단 의류 등 다양한 가게들이 입주해 있는 12층짜리 건물에는 훙하이(鴻海. 폭스콘)그룹의 정보발신기지 역할을 하는 이벤트장이 자리 잡고 있다.

궈타이밍 회장의 아들 궈소우정(郭守正 40)이 '삼창' 운영회사의 회장으로 아버지가 운영하는 그룹에 발을 들여놓자 현지 언론은 '왕자의 귀환'이라고 요란하게 보도했다.




소우정은 훙하이가 창업 2년째로 아직 영세기업이던 1976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업을 꾸려 나가느라 바빠 집에서 가족과 보낼 시간도 거의 없었다. 소우정은 12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공장관리를 전공했다. 훙하이의 후계자로 기대를 모았지만, 대학 졸업후 훙하이에 들어가지 않고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대학 시절 만난 아내의 영향으로 영화에 심취해 25세 때부터 영화제작회사 등 10개 이상의 회사를 세웠다. "예의 바르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이야기만으로도 반듯하게 자랐음이 드러난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강렬한 개성으로 "훙하이의 총사령관"으로 불리는 아버지와는 크게 다르다.

그는 삼창의 회장을 맡고 있지만 훙하이 그룹내에서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 궈타이밍 회장도 아들이 그룹에 들어오기 전부터 "후계자는 혈연이 아니라 능력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소우정 본인도 13년 전 언론에 "나는 왕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럴 생각만 있다면 언제라도 빅터에게 경영을 맡길 수 있다". 지난 22일 창장(長江)그룹 결산기자회견에서 88세의 리카싱 회장이 한 말이다. 빅터는 장남인 리쩌쥐(빅터 리. 52)를 가리킨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원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후 1987년 창장그룹에 들어가 아버지 밑에서 제왕학을 배웠다. 지금은 창장화기(和記)실업(CK허치슨홀딩스) 부사장으로 아버지를 보좌하면서 인프라 사업을 담당하는 창장기건(基建) 등 일부 상장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다. 중국 정부에 정책 조언을 하는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을 맡아 중국 정·재계와의 파이프 역도 이어받았다.

빅터는 공식 석상에서는 아버지의 보좌역에 충실하며 전면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1996년 홍콩의 거물 마피아에게 납치돼 리카싱 회장이 약 10억 홍콩달러(약 1천500억 원)의 몸값을 주고 구출한 쓰라린 경험도 있다. 창장그룹과 거래하는 한 기업의 간부는 "아버지만큼의 카리스마는 없지만 머리는 좋다"고 평했다.

lhy501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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