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해외파 선수들도 적발…엘리트 체육 위주 관행 '도마 위'
(세종=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 학교 수업이나 시험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고도 학점을 딴 체육특기생들이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그동안 '관행'처럼 여겨져 온 체육특기자에 대한 학사관리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적발된 학생들 중에는 해외리그에서 주로 활동해 국내에서 대학 생활이 어려운 선수들도 10명가량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국내 대학의 '유명 선수 모시기' 경쟁과 허술한 학사관리 실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학고' 누적에도 졸업장…군 입대·프로 입단에도 학점은 꼬박꼬박 취득
29일 교육부가 발표한 체육특기생 학사관리 부실 사례는 크게 5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 씨처럼 학사경고가 누적됐는데도 학칙과 달리 멀쩡하게 졸업장을 받은 사례다.
체육특기생이 많은 국내 대학 상당수는 2000년대 후반까지 연속 3회 또는 누적 3∼4회의 학사경고를 받은 학생은 제적하도록 하는 학칙을 둬 왔다.
하지만 고려대와 연세대 등 4개 대학은 최근 10년간 총장 결재나 학생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이유를 들어 394명을 그냥 졸업시켰다.
졸업생이 아닌 재학생 가운데서도 학사관리 부실 사례가 대거 적발됐다.
재학생 가운데 학사관리가 제대로 안 된 것으로 나타난 이들은 332명인데 이중에는 학칙뿐 아니라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등 법을 어겨가며 학점을 딴 이들도 8명 적발됐다.
한 학생은 특정 수업에는 출석하고 같은 기간에 진행되는 다른 수업에는 결석했다. 그러면서 병원 진료사실 확인서의 입원일수를 마음대로 늘려 결석했던 수업의 학점을 인정받았다.
재학 중 프로구단에 입단해 학교에 다니기 어려운데도 출석과 성적이 인정된 학생은 57명이었다.
장기 입원했거나 재활치료로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는데도 출석과 학점을 인정받은 학생은 25명, 이밖에 출석 일수가 모자라는데도 학점을 딴 체육특기생은 417명(과목별 중복사례 포함)에 달했다.
◇ '관행'에 기댄 학생·학사관리 눈감은 대학
일각에서는 체육특기자에 대한 부실한 학사관리가 오랜 기간 곪은 사회적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기 성적에만 신경 써도 대학 졸업장을 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학생과, 학교 이미지 제고를 위해 유망 선수에게 손쉽게 졸업장을 쥐여주는 대학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국위선양'을 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는 '엘리트 체육' 관행이 빚어낸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이번에 적발된 학생 일부는 해외리그에서 활동하는 골프·축구선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기당 15주∼16주인 수업일수 가운데 필수 출석 일수는 학교별로 4주∼12주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해외리그에서 뛸 경우 현지 훈련일과 체류일이 많아 출석 일수를 채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학교의 '배려'가 없다면 졸업이 만만치 않다는 게 대학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이런 '배려'는 미국이나 일본의 상위권 대학에서는 흔치 않은 관행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뛰는 미셸 위 선수는 학사관리가 엄격한 스탠퍼드대학에 재학생 시절에 학업과 골프를 병행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자주 토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에 비해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대학 관계자는 "대학이 유명 선수를 유치하려고 물밑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아는 사실"이라며 "이미지 제고가 목적이기 때문에 학교 입장에서는 이 학생이 수업을 얼마나 성실하게 듣는가는 그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리그에서 활약하거나 해외 경기가 많은 유명 체육특기생이 대학에 입학할 경우 학사관리 부실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그때마다 대학들은 '특혜는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과 짧은 프로선수 생명이 체육특기생으로 하여금 무리하게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프로 스포츠구단 관계자는 "운동선수도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대학 졸업 전 프로에 진출하는) 얼리 엔트리(early entry)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며 "몇 년의 프로 생활을 위해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때문에 결국 학생들이 편법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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