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의존 산업구조 다각화 전략으로 방위산업 육성
(서울=연합뉴스) 정광훈 기자 = 국제 무기시장의 큰손들인 걸프 아랍국들이 서방국들에 대한 군사장비 의존도를 낮추면서 독자적인 방위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걸프 아랍국들은 서방의 군사장비 공급 업체들을 향해 거래를 계속하려면 기술을 이전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예멘 내전과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동맹군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미 역내에서 가장 첨단화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밀 군사장비의 경우, 자체 생산은커녕 도입과 정비에도 제약이 따른다.
WSJ에 따르면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방위비 지출국인 사우디는 2030년까지 군사장비 구매 예산의 절반을 자국 업체들에게 돌리겠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현재 군사장비 예산에서 사우디 업체에 돌아가는 비율이 2%에 불과하지만, 사우디 정부가 목표치의 일부만 달성하더라도 국제 방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작지 않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사우디 방위비 지출은 약 872억 달러에 달했다.
사우디 국방장관을 겸하는 모하메드 빈살만 부왕세자는 지난해 TV 연설에서 외국 무기 공급업체들이 사우디 업체와 제휴해야만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프랑스보다 많은 국방 예산을 지출하고 있음에도 초라한 사우디 방위산업의 현주소를 지적하고, 자국 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발언은 곧바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험비 차량 제작사인 미국 AM 제너럴은 상업용 섀시의 수출을 시작한다고 지난 2월 발표했다. 덕분에 걸프 지역 파트너들을 비롯한 고객사들이 상업용 험비 장갑차량을 자체 조립할 수 있게 됐다. 전파방해기와 레이저 등의 장비를 공급하는 사우디-영국 합작 업체 AEC도 최근 미국 레이시온과 제휴를 맺고 사우디 정부의 사이버 보안 개발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글로벌 업체인 보잉도 중동에 새로운 생산라인 설립을 모색하고 있다. 보잉의 버나드 던 중동·북아프리카·터키 담당 사장은 WSJ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보잉은 상호 사업 성장을 위한 잠재적 제휴 기회를 계속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제휴 기회를 찾는 일이 외국 업체들에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현행 정책은 일부 부속품의 아웃소싱은 허락하지만 민감한 군사기술에 대해선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미 국방부 고위 관리는 2년 전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록히드 마틴사의 F-35 스텔스 전투기를 가까운 시일 내 지역 국가들에 판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이 역내 군사적 우위를 유지토록 하기 위한 규정임을 암시했다.
UAE는 이후 제휴선을 러시아로 돌렸다. UAE 국방부는 지난달 러시아 국영 무기 수출업체 로스텍과 경전투기를 공동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UAE는 이미 장갑차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달 초 중국과 드론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 보잉이 지분 일부를 보유하는 사우디 알살람항공우주산업(AAI)은 2030년까지 첫 완제기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회사는 헬리콥터 정비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탱크에서 폭탄까지 생산한다는 장기 계획도 갖고 있다.
석유 의존 산업구조의 다각화를 고민하는 걸프 국가들이 방위산업 육성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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