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응원을 부탁합니다."
프로배구 V리그가 2016-2017시즌을 시작하기 전, IBK기업은행 레프트 박정아(24)는 응원이 필요했던 선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그가 받았을 상처와 충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V리그 전초전인 프로배구연맹(KOVO)컵이 청주에서 개막한 지난해 9월, 이 감독은 첫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박정아 걱정부터 했다.
당시 이 감독은 기자들에게 "다 잊었고 댓글도 안 본다고 한다. '괜찮으냐'고 물어봤는데 많이 털어낸 모습이다"라고 전하면서 박정아에게 올림픽 관련 질문은 삼가달라는 당부도 했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은 지난해 8월 많은 기대 속에서 리우올림픽에 출전했으나 4강에 오르지 못하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8강 네덜란드전 부진이 뼈 아팠다.
리시브가 약했다는 분석에 일부 팬들은 레프트를 맡은 박정아를 표적으로 심한 말을 쏟아냈다. 박정아의 SNS와 관련 기사에는 테러 수준의 '악성 댓글'이 넘쳤다.
피로 누적과 상실감에 더해 심한 욕설은 박정아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눈물로 보내는 날들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박정아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자신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시선 속에서 IBK기업은행을 KOVO컵 우승으로 이끌고 최우수선수상(MVP)까지 거머쥐었다.
MVP 인터뷰에서 박정아는 "결국 제가 잘하면 되는 것 같다. '이제 실수는 그만하자. 더 잘하자'라고 다짐한다"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V리그가 개막하자 박정아는 길었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단발머리로 변신했다. 새 출발 하겠다는 결의의 메시지로 읽혔다.
박정아는 V리그 정규시즌에서 외국인 선수 매디슨 리쉘, 팀의 간판이자 에이스인 김희진과 '삼각편대'를 구축하고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공헌했다.
IBK기업은행은 플레이오프(3전 2승제)에서는 접전 끝에 KGC인삼공사를 2승 1패로 누르고 챔피언결정전(5전 3승제)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체력' 문제가 대두했다. 격전을 치르면서 피로를 호소하는 IBK기업은행 선수들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온 흥국생명 선수들보다 체력 면에서 불리했다.
그러나 IBK기업은행은 분위기 메이커로 나선 박정아의 활약으로 흥국생명을 3승 1패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리우올림픽 상처를 치유하면서 단단하게 굳어진 박정아의 정신력이 빛났다.
IBK기업은행이 흥국생명에 승리를 따낼 때는 어김없이 박정아가 활약했다.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박정아는 무려 26득점을 올리며 리쉘(33득점)과 함께 쌍포를 이뤘다. 블로킹 3개, 서브에이스 1개로 분위기를 더욱 끌어 올렸다. IBK기업은행은 세트 스코어 3-1로 흥국생명을 격파했다. 1차전 패배도 설욕했다.
3차전에서도 박정아는 23득점으로 활약을 이어갔다. IBK기업은행은 세트 스코어 3-2로 흥국생명을 어렵게 눌렀다. 리쉘이 42득점으로 공격을 주도했으나, 박정아가 이만큼 거들지 않았더라면 승리를 가져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박정아는 3일 화성종합체육관에서 열린 4차전에서도 힘을 냈다. 역시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16득점을 폭발하며 IBK기업은행의 우승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챔피언결정전에서 박정아가 성공한 블로킹은 총 11개에 이른다.
심리·체력 문제를 완벽히 극복한 박정아가 있었기에 IBK기업은행은 2년 만에 V리그 여자부 정상의 자리를 되찾았다.
박정아는 한층 성숙해진 시즌을 보내면서 강인한 선수로 거듭났다.
abbi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