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맞아 죽을 놈들" 외치던 서울중앙지검 인근 지지자들 모두 해산
1990년부터 살던 자택…국회의원·대통령직 거머쥐어 정치적 의미 남달라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김인철 양지웅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31일 새벽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강남구 삼성동 자택은 다시 주인을 잃었다.
박 전 대통령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러 전날 집을 비웠으니 이달 12일 청와대를 떠나 집으로 돌아온 지 18일 만이다.
집 안팎은 적막하고 한산했다. 이날 오전 6시30분 서재와 침실이 있는 2층은 불이 꺼져 있고 거실이 있는 1층에만 군데군데 불이 켜져 있었다.
이영선 경호관이 오전 5시께 집에 들어갔다가 1시간 뒤 나왔으며, 미용과 화장을 담당하는 정송주·매주 원장은 당연히 나타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집 앞 골목을 지키는 지지자 숫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일인 이달 10일부터 지지자들은 수십에서 수백명씩 모여 박 전 대통령의 집 앞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켜왔다.
몇 안 되는 지지자들이었지만 표정은 넋이 나간듯했다. 구속 소식을 접한 근혜동산 김주복 회장은 오전 3시 45분께 집 앞에서 삭발했다.
한 여성 지지자는 팔짱을 낀 채 한숨을 내쉬며 박 전 대통령의 집을 바라봤고, 또 다른 여성 지지자는 담벼락 앞에 붙은 사진을 어루만지며 엉엉 울었다.
서울중앙지검 인근에서 노숙하던 지지자들 10여명은 구속 결과가 나오고 나서 "벼락 맞아 죽을 놈들"이라고 소리치며 울분을 토하다 7시 30분께 모두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동 자택은 정치적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돼 내리 5선을 했으며 정치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1979년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잃고 청와대를 나온 박 전 대통령은 중구 신당동, 성북구 성북동, 중구 장충동 등 서울 강북에서 살다가 1990년 강남구 삼성동에 둥지를 틀었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공직자 정기재산변동 신고사항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은 공시가격 기준 대지(484.00㎡·146평)와 건물(317.35㎡·96평)을 합친 27억1천만원으로 신고됐다.
정치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박 전 대통령을 칩거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삼성동 자택은 늘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1993년 수필집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을 발간하고 나서 박 전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동 자택에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밝혔을 뿐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지만, 각종 공과금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 관리해온 것으로 보인다.
삼성동 자택의 유선전화는 박 전 대통령을 1998년 국회 입성 때부터 그림자처럼 수행해오던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 비서관 명의로 개설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집으로 안 전 비서관의 이름이 찍힌 요금명세서가 배달된 게 언론에 포착됐다.
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은 2002년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 출입기자들을 초청하며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됐다. 이후 2004년 당 대표 시절에도 몇 차례 기자들을 집으로 불러 식사를 했다.
당시 집 안 곳곳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 나란히 서 있는 그림, 박 전 대통령이 직접 그린 그림, 모친인 육영수 여사가 수놓은 한반도 액자, 가족사진 등이 걸려있었다.
2013년 2월 25일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33년 3개월 만에 복귀하고 나서 삼성동 자택은 4년 넘게 비어 있었다.
오랜 기간 사람 손이 닿지 않았던 만큼 삼성동 자택 내부를 보수하는 데 꼬박 사흘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정작 주인은 언제 돌아올지 모를 길을 또다시 떠나고 말았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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