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35년 전 작고한 조각가 우성(又誠) 김종영(1915∼1982)에게는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하지만 그가 생전에 남긴 작품은 조각 300여 점, 서예 1천여 점, 드로잉 3천여 점이다. 특이하게도 서예가 조각보다 더 많다.
일제강점기 경남 창원의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동서양의 미학을 융합하고 신구의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은 김종영 작품의 뿌리가 무엇인지, 그가 어떠한 관점에서 서양 미술을 수용했는지를 조명하는 특별전 '김종영, 그의 여정'을 31일부터 연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김종영은 비슷한 연배의 다른 작가와 비교하면 전통 서화(書畵, 글씨와 그림)를 잘 알고, 그에 대한 관심도 컸다"며 "조각가로서 평생 서예를 했지만, 그의 서예 작품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소개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종영의 예술세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동했던 때가 '서화에서 미술로의 전환기'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시에는 서예, 드로잉, 조각, 서신, 유품 등 95점이 나오며, 그중 서예 작품 10여 점은 처음 공개된다.
본관은 작가가 창원 시절부터 1950년대까지 제작한 작품들로 꾸며지고, 신관에서는 1960년대 이후 선보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은 작가가 영국 런던에서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를 주제로 열린 국제조각대회에서 상을 받은 1953년, 스스로 그동안의 실험을 종합해야겠다고 마음먹은 1964년, '북한산'이라는 세련된 그림을 그린 1973년을 김종영 인생의 변곡점으로 설정해 전시를 구성했다.
박춘호 실장은 "김종영은 58세였던 1973년 자신이 살던 삼선교를 배경으로 '세한도'를 남겼는데, 그가 사표로 삼았던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를 그린 나이도 58세였다"며 "그는 추상조각가였지만, 한편으로는 사대부 문예의 정수를 체화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5월 31일까지. 문의 ☎ 02-3217-6484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