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는 가난한데 기업은 부자…돈 빌리던 기업이 대부자로

입력 2017-04-03 06:27  

가계는 가난한데 기업은 부자…돈 빌리던 기업이 대부자로

글로벌 투자재원, '가계저축→기업저축' 전환

국내 기업 순자금조달 규모 44년 만에 가장 작아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기자 = 가계와 기업·정부 등 3대 경제주체 중에서 기업은 전통적으로 자금을 빌리는 주체다.

주주들의 자본금 외에 더 필요한 자금을 외부에서 빌려 투자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 이윤을 낸 뒤 이를 주주와 대부자·직원들에게 배당·이자·급여의 형태로 배분하는 게 기업의 역할이다.

기업이 차입하는 자금의 재원은 대부분 가계의 저축에서 나왔다. 가계가 소득을 아껴 저축하면 이 자금이 금융기관 등을 통해 기업에 투자 또는 차입의 형태로 유입되는 순환 구조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전통적인 차입자였던 기업이 돈을 빌려주는 대부자로 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투자부진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부채감축, 금리하락, 배당과 급여 증가 부진 등으로 기업의 저축이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비영리 민간연구단체인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3일 '글로벌 기업저축(Corporate Saving)의 증가' 보고서에서 "최근 글로벌 경제에서 기업부문이 자금의 순대부자(Net lender)가 됐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1960년부터 2013년까지 전 세계 66개국의 국민계정체계(SNA)를 비롯한 유엔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자료를 분석했다.

분석결과 1980년께 글로벌 기업저축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10년대에는 약 15%까지 증가했다.

이 30년간 기업저축의 GDP 대비 비율은 약 5%포인트 상승했지만 가계저축의 GDP 비율은 오히려 6%포인트가량 떨어졌다.






같은 기간 기업의 총부가가치(GVA) 대비 기업저축비율은 9%포인트가량 상승했다. 반면 가계저축비율은 50%에서 30% 수준으로 급락했다.

분석결과 1980년대 초반 글로벌 투자자금의 대부분이 가계저축으로 충당됐는데 2010년대에는 투자자금의 3분의 2 정도가 기업저축이었다.

기업부문의 저축 증가는 글로벌 10대 경제 대국을 포함해 특정한 국가나 산업,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이 노동분배율 하락, 기업의 현금보유 증가, 자사주매입 확대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이익이 늘어난 만큼 배당금 지급이나 투자가 증가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기업저축의 일부가 자사주매입이나 사내유보 등으로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기업들도 내부 유보금이 늘면서 외부 자금조달을 줄여가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은행의 기업대출(원화대출)은 20조8천억원 늘었다. 증가 규모가 2015년 48조3천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중 대기업은 은행대출을 2015년 4조5천억원 갚았고 작년엔 2배가 넘는 9조7천억원을 상환했다.

회사채는 6조7천억원어치를 순상환했고 기업어음(CP) 순상환도 2조1천억원에 달했다.

한은의 자금순환표를 보면 작년 기업(비금융법인)의 순자금조달(조달-운용) 규모는 9천860억원에 그쳤다.

이는 2015년의 7.7%에 불과했고 1972년 5천440억원 이후 44년 만에 가장 작은 수준이다.

작년 6월 말 10개 그룹 상장사의 사내 유보금은 550조원으로 전년 말보다 3조6천억원 능가하면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hoon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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