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망 중립성은 대표적인 워싱턴 관료주의…싸워나갈 것"
"오픈 인터넷의 민주적 가치 훼손 안 돼" vs "정부가 부의 할당에 관여" 찬반 팽팽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반이민 행정명령이 법원에서 무효가 되고, 트럼프 케어는 공화당 내분으로 의회에 상정조차 하지 못한 채 무산되는 등 잇단 정책적 실패에 직면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러나 그가 자신의 공약을 차질없이 실현해 나가는 분야도 있다. 바로 IT 분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8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개인정보 보호 규제 조항을 무력화하는 결의안을 미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로써 버라이즌, 컴캐스트 등 미국의 대형 통신업체들은 이용자 동의 없이 인터넷 사용 정보와 앱 활동을 추적하고 이를 광고업자와 공유할 길이 열리게 됐다.
그동안 미국 통신업체들은 FCC의 규제 대상이 아닌 구글과 페이스북 등 인터넷 사업자들이 이용자의 온라인 데이터를 통해 엄청난 광고 수익을 올리는 데 반해 통신업자들은 공정한 경쟁에서 배제됐다며 이 조항 삭제를 주장했고, 이를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망 중립성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가 온라인 통신망 사업자를 통신 서비스로 재분류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도한 조치를 되돌릴 것을 공약한 바 있다"고 말했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혁신과 일자리 창출,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워싱턴의 관료주의와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31일 "이는 망 중립성이 다음 차례가 될 것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짓 파이 전 버라이즌 법률 대리인을 FCC 위원장에 선임한 것은 망 중립성을 폐기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봐야 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망 중립성 규칙을 폐기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 규제 폐기 때와 달리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NYT는 전했다.
우선 개인정보 보호 규제는 지난해 제정됐기 때문에 의회의 법안검토 규정에 따라 간소화 절차를 통해 폐기가 가능했지만, 2년 전 FCC가 승인한 망 중립성은 간소화 절차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폐기하려면 파이 위원장은 FCC에서 이 문제를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망 중립성은 '3 No'로 불리는 '차단 금지(No Blocking)', '조절 금지(No Throttling)' '지불에 따른 차별 금지(No Paid prioritization)'의 세 가지 원칙이 근간을 이룬다.
합법적 콘텐츠의 접근을 막아서는 안 되며, 합법적 인터넷 트래픽을 손상하거나 저하해서도 안 되고, 통신망 사업자가 합법적 인터넷 트래픽들에 대해 통신 속도에 따라 요금을 차등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령,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막대한 통신량을 유발하는 콘텐츠 사업자에게 특별 전송 속도를 부여하는 대가로 급행료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FCC는 지난 2015년 이 규칙을 제정하면서 100만 명 이상의 공공 의견을 접수했으며 이들 대부분이 망 중립성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NYT는 "이 압도적 찬성은 개방형 인터넷이 갖는 민주주의적 정신 때문"이라며 "이는 망 중립성이 휘발성 있고 폭발적인 이슈임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버라이즌이나 AT&T 등 통신사업자들은 거대한 통신량을 유발하는 콘텐츠 사업자에게 별도 요금을 청구할 수 없다면 네트워크 시설에 대한 투자 위축으로 결국 고객 전체에게 피해가 간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 보수단체인 기업연구소의 제프리 아이제나크는 "망 중립성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 강력한 인터넷 회사들의 매우 효과적인 로비의 결과였다"며 "그러나 이 규제로 인해 정부가 부를 할당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누구나 공평하게 모든 콘텐츠를 동일한 속도로 사용할 수 있는 개방형 인터넷 규제인 FCC의 망 중립성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정치적 측면에서도 매우 흥미롭다고 NYT는 전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 밸리의 IT 거인들은 대부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버라이즌이나 AT&T, 스프린트 등 미국의 통신업체들은 공화당 트럼프 후보 쪽에 줄을 댔다. 이들은 전통적인 공화당의 큰 손들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당선된 후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철폐하고, 망 중립성을 없애는 IT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시도는 모두 실리콘 밸리 기업들에는 손해로, 통신업체들에는 이익으로 귀결되는 사안이다. 트럼프의 오바마 지우기와 실리콘 밸리에 대한 반감이 IT 업계의 새로운 판도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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