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의원들, 빈곤·가정폭력 체험 잇따라 눈물로 공개
(시드니=연합뉴스) 김기성 특파원 = 호주의 여성 의원들이 불우했던 과거를 용기를 내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약자 보호에 나서 호주 사회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들 의원은 의회 연설이라는 공개석상을 통해 남에게 꺼내놓기 어려운 체험을 격정적으로, 때로는 눈물로 소개하면서 빈곤층 복지의 중요성이나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강조해 동료 의원이나 국민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 소속 앤 앨리(50) 연방 하원의원은 지난달 29일 의회 연설을 통해 사회복지 혜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소개하며 정부가 추진하는 빈곤 가정 복지축소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해 총선으로 처음 의회에 진출한 앨리 의원은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3살과 1살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복지혜택에 의존했던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이집트 태생인 앨리 의원은 "복지혜택을 신청하려고 관계 시설로 찾아가던 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 안에는 나보다 앞서, 절망적인 상황의 수백만 명이 밟았던 카펫과 눈에 거슬리는 조명이 있었다"고 말했다.
앨리는 이어 "첫 양육보조금을 받으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완전히 빈털터리라 내 이름으로는 1 센트도 없었다. 한 주 뒤 양육보조금이 나올 때까지 아이들을 먹일 방법이 없었다"라고 당시 난감한 상황을 소개했다.
앨리는 또 "그날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도 결코 잊을 수 없다. 구석을 돌아 거친 콘크리트 벽에 기대 눈물을 쏟아냈다"라고 덧붙였다.
앨리 의원이 이처럼 감추고 싶은 과거를 공개한 것은 연방정부가 가정보조금 축소를 추진하면서 수혜자들로서는 돈을 덜 받을 뿐만 아니라 4주나 기다려야 할 수도 있는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앨리 의원은 정부가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정폭력을 피해 나온 많은 엄마는 달리 선택할 게 없었을 뿐 정부를 속이려 그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 1주일 전에는 무소속의 재키 램비(46) 연방 상원의원이 의회 연설에서 싱글맘으로서 힘겨웠던 과거 7년을 털어놓으며 저소득층 가정의 복지를 위축시키려는 움직임에 맞선 바 있다.
뜻밖의 부상으로 예정에 없이 군에서 나온 램비 의원은 운동을 잘하는 아들에게 축구화를 사줄 수도 없는 처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려면 복지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램비 의원은 수치심에 구석에 앉아서 울었던 때도, 이틀 동안 빵이나 우유가 떨어졌을 때도 있었다며 차량 등록도 못 하거나 무면허 상태로 운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램비 의원은 여전히 일부는 쓰레기 더미에 깔린 것과 같은 처지에서 아이들을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며 복지 축소 계획을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밖에 노동당 소속 엠마 후자흐(36) 연방 하원의원도 지난해 11월 의회 연설에서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어린 시절 고통스러웠던 피해 사실을 눈물로 털어놓았다.
후자흐 의원은 가정폭력의 희생자라는 게 수치스럽고 당황스럽다면서 특히 13살까지는 술에 취하기만 하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때문에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는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는 "어린 시절 엄마를 상대로 한 폭력이 직접 가해지지는 않았지만 나도 피해를 본 것이나 마찬가지의 상처를 갖고 있다"며 "지금도 나는 그것을 생생하게, 아주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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