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집합적 기억…모두에 책임있다"…"좋은 이야기가 갖는 힘 믿는다"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인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8)가 "역사를 잊으려 하거나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며 일본 우익들의 역사 수정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2일자 일본 언론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그는 최근 일본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역사라는 것은 국가에 있어서 집합적인 기억이며 이 집합적인 기억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짊어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이를 과거의 일로 치부해 잊으려 하거나 (역사를) 바꿔쓰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전후에 태어났다고 해서 내게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최신작 '기사단장 죽이기(騎士團長殺し)'에서 난징(南京)대학살 등 과거사와 관련한 내용이 있는 것과 관련해 자신의 의도를 밝히는 대목에서 나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 일본 사회에서 과거사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이 퍼져 있는 것에 쓴소리를 한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해 극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림'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나 난징대학살 사건과 얽혀있는 역사의 상처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등장인물의 대사 중에서는 난징대학살에 대해 "일본군이 항복한 병사와 시민 10만~40만명을 죽였다"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역사수정주의적인 움직임에 대해 "맞서 싸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소설가에게 가능한 일은 한정돼 있지만 이야기라는 형태로 싸워나가는 것은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루키는 일본 국내외에 퍼진 배외주의(排外主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물건(이물)을 배제하면 세계가 좋아진다는 사고방식은 소위 '인종청소'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소설가로, 매년 가장 강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지난 2월 일본에서 출판된 '기사단장 죽이기'는 지난 2010~2011년 출간된 '1Q84'에 이어 7년 만에 나온 하루키의 본격 장편소설이다. 아내에게 갑자기 이별을 통보받은 초상화 화가가 불가사의한 일에 휩쓸리면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출간 한 달여 만에 130만부 이상 팔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는 6~7월 출간될 예정이다.
하루키는 이 소설의 출간 직후 우익들로부터 난징대학살 관련 내용에 대해 집중공격을 받기도 했다.
한 등장인물이 "일본군이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거해 여기에서 대량의 살인이 일어났다.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다"고 말하는 대목에 대해 우익 네티즌들은 블로그나 SNS 등에 "매국노"라는 표현까지 쓰며 하루키를 비난했다.
한편, 하루키는 이날 공개된 인터뷰에서 일본 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을 내비치면서도 이야기, 즉 소설이 구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버블(거품경제 시기)이 지나가고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사건이 일어났다. 지진과 원전사고가 났다.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 "나는 좋은 이야기를 쓰면 어떤 종류의 힘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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