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천 칼럼] 대선 국면에 비친 '1994년 데자뷔'

입력 2017-04-05 15:40  

[한기천 칼럼] 대선 국면에 비친 '1994년 데자뷔'

(서울=연합뉴스) 북핵 문제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은 것 같다.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가진 미·일·중·러 4개국은 북핵을 보는 시각에서 상당한 괴리를 보여왔고, 당연히 그런 시각차는 지금도 남아 있다. 이번에 판을 흔든 파동의 진앙은 미국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최종 단계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새로운 대북 정책의 핵심은 분명히 핵 문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의 핵을 한반도 프레임에 가둬 놓고, 현상만 유지하는 정책을 은근히 견지해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 입장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차선책일 수 있다. 그런데 6∼7일(현지시간)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러 경로로 흘러나오는 신호들은, 한결같이 미국의 급선회를 시사한다. 북핵의 '현상유지'를 계속 용인할 수 없다는 쪽으로 기본인식이 바뀌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완전한 실패작으로 혹평했다. 이제 관심은 대북 정책의 선회 각도에 모이고 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주목받는 이유도 새 대북 정책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 구상 안에서 한국이 점하는 위치와 비중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안팎으로 민감한 시기에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입장에서 대북 정책의 대폭 수정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오마바표' 정책의 무조건적 부정은 아닐 테지만 '전략적 인내'와 정반대로 방향을 잡은 것은 거의 확실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의 성질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고도화해, 이젠 미국에도 '실제적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예상도는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기술이 실전적 무기체계로 결합하는 것이다. 북한이 호언장담한 것처럼 ICBM에 탑재할 만큼 핵탄두 소형화가 진전되고, ICBM 시험 발사도 '마감 단계'에 도달한 것이 사실이라면 북핵의 심각성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커질 수 있다. 미 본토가 북핵의 타격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만 갖고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포지션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북핵을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로 묶어두고 현상을 관망하는 전략은 아예 검토 대상도 될 수 없다.




요즘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북한은 다음 핵실험에서 폭발 위력을 150∼200kt로 증강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2006년 이후 북한의 5차례 핵실험을 되짚어보면 최종 목표가 선명히 드러난다. 1차 때 1kt(TNT 1천 톤)에 불과했던 폭발 위력은 5차 때 10kt로 커졌다. 4∼5차 때는 증폭 핵분열탄을 시험했다. 증폭 핵분열은 중성자로 핵분열을 촉진해 위력을 10배까지 키우는 기술이다. 수소폭탄 개발의 전 단계이자 핵탄두 소형화의 핵심기술로 꼽힌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해 폭발 위력을 5차 때의 최고 20배까지 키운다면 이는 핵탄두 소형화 기술의 획기적 진전을 의미한다. 그런데 핵폭탄 못지않게 위협적인 전략자산이 ICBM이다. 미국 정도로 멀리 떨어진 목표 지점에 핵탄두를 날려 보내려면 ICBM이 꼭 필요하다. 북한이 이번에 핵실험과 ICBM 발사를 동시에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만약 북한의 핵과 ICBM이 무기체계로 결합한다면 북핵의 전략적 위험 수위는 수직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유사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 요소로 부상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을 향해 최후통첩 비슷한 경고를 했다.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이 직접 나서겠다는 것이 요지다. 미국이 직접 해결하려고 할 때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의 범위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중국은 대북 송유 중단 같은 치명적 카드를 갖고 있다. 미국이 어디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지 궁금증과 걱정이 엇갈린다. 분명한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결정 방향과 호흡을 섣불리 예측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트럼프 행정부가 국익 우선의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한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절대 불변'의 가치는 없다. 우리 국민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한미 동맹도 마찬가지다.게다가 지금 국내에선 한미 동맹에 균열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스러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대표적이다. 미·일·중·러 간의 한반도 현안 논의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질 만도 하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그런 기류를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정책이 협상 테이블에 오른다는데 우리는 간헐적인 외신 보도 외에 아는 것이 없다.



이 회담을 이틀 앞둔 4일 북한은 '북극성 2형'으로 추정되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또 발사했다. 비행 거리는 60여Km에 그쳤지만, 미·중 정상회담을 겨냥한 무력시위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와중에 미국 NBC 방송의 '간판 앵커' 레스터 홀트는 한국에 들어와 비무장지대와 오산 공군기지를 배경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미 정부가 북한 핵시설 선제타격을 검토했던 1994년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홀트는 미 정보당국자를 인용, "북핵 위협을 막기 위해 군사 공격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지금 한반도 상황을 얼마나 엄중하게 보고 있는지 느껴진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강 대 강' 파열음이 커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국내 분위기는 완전히 딴 세상 같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조기 대선에 다들 정신이 없다고 하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걱정이다.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리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조기 대선이니 정부 공백이나 하는 핑계가 통할 리 없다. (논설위원실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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