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전두환 "유럽순방 국빈방문 만들라"…무리한 시도

입력 2017-04-11 06:00   수정 2017-04-11 06:18

[외교문서] 전두환 "유럽순방 국빈방문 만들라"…무리한 시도

英·獨·佛 상대 "의전과 형식이 중요하다"며 집요한 요구

국빈방문국 이미 결정·시간 촉박 등 이유로 거절…벨기에만 성사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영국·서독·프랑스·벨기에 등 유럽 4개국 순방(1986년 4월5일∼21일)에 나서면서 '국빈방문' 형식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대부분 거절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11일 공개된 외교문서를 보면, 순방 9개월을 앞둔 1985년 7월 5일 작성된 '알프스 계획에 대한 대통령 각하 지시사항'에는 "3개국 모두 국빈방문으로 하기 바람"이라고 적혀 있다.

'알프스 계획'은 유럽순방을 일컫는 것으로, 당시 방문 계획이 확정된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3국에 대해 모두 의전의 격이 가장 높은 '국빈방문'으로 추진하라는 지시다.

대통령 해외방문은 의전의 차이에 따라 국빈방문(State Visit), 공식방문(Official Visit), 실무방문(Working Visit) 등으로 구분된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외무부가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영국과 서독, 프랑스 모두 준비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손사래를 쳤다.





주한 영국대사는 85년 7월 11일 이원경 당시 외무부 장관의 '국빈방문' 요청에 "국빈방문은 접수 횟수가 극히 제한돼 있으며 매우 오래전부터 계획돼야 하므로 가능할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영국에 '국빈방문' 형식으로 방문하려면 통상 수년 전에 신청해야 한다. 영연방 국가인 말라위의 대통령도 81년에 국빈방문을 신청해 85년에야 방문할 수 있었다.

영국 측은 "공식방문이 오히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며 "방문 형식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설득했지만, 우리 측은 "대통령의 첫 영국 방문이니 의전이 중요하다"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수개월에 걸친 요구에도 영국이 꿈쩍하지 않자 전두환 정권은 형식은 공식방문으로 하되 의전의 격을 높이는 데 주력했고, 영국 총리 주재 오찬을 만찬으로 변경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독일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은 1년에 통상 4건의 국빈방문을 접수하는 데 86년의 경우에는 모두 마감돼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우리 측은 '아시아는 의전과 형식을 중요하게 여긴다'며 국빈방문이 성사되지 못하면 독일 방문이 어려울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이미 결정된 4개국 중 한 곳을 한국으로 교체해 달라고 시사하는 등 무리수를 두며 독일을 압박했다.

한국의 거듭된 요청에 독일 측은 '정 그러면 87년에 방문할 것을 고려해라'라고 대응하기도 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외무부는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 100주년이라는 점을 내세워 국빈방문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한 프랑스 대사는 85년 7월15일 외무부 구주국장과의 면담에서 "비용이 많이 들고 파리시 전체가 마비돼 여론이 호응치 않아 1950년 이후로는 국빈방문을 받지 않고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

이에 우리 측은 "귀측의 어려움은 알겠지만 국빈방문 시행이라는 우리의 기본원칙은 불변"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영·독·프 3국보다 늦게 방문국으로 추가된 벨기에는 별 진통 없이 우리의 '국빈방문' 요청을 받아들였다.

transi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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