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제화' 피하기로…88올림픽 동구권 국가 참가 염두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1983년 발생한 대한항공(KAL) 007편 여객기 피격사건의 피해배상을 놓고 한국이 옛 소련과 갈등을 빚던 1986년 전두환 정부가 2년 앞으로 다가온 서울 하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갈등 수위 조절에 나섰던 정황이 당시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11일 정부가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6년 8월 외무부는 'KAL기 사건 3주년 대책'이라는 제목의 내부 문건에서 KAL기를 격추한 옛 소련에 대해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원칙을 유지하되 사건의 '정치문제화'를 피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는 옛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것이라고 문건에 기록돼 있다.
1983년 9월 1일 옛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발생한 KAL기 피격사건 3주기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KAL기 피격사건으로 한국인 81명을 포함한 탑승객과 승무원 269명 전원이 희생됐다.
문건은 구체적인 대책으로 ▲ 사건의 정치문제화 재연 지양 ▲ 정부 차원의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음 ▲ 민간 차원에서의 추도식 거행에는 관여하지 않음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다만, "법률적 차원에서의 배상 요구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국제 여건을 감안, 필요한 경우 신중히 처리토록 함"이라는 지침을 덧붙였다.
KAL기 피격사건 직후 정부는 피해배상을 끌어내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책임을 져야 할 옛 소련은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정부가 미국을 통해 피해배상에 관한 입장을 전달하려고 하자 이를 접수하는 것조차 거부하는가 하면, 피격 당시 KAL기가 옛 소련 영공을 침범해 미국 정보기관의 첩보활동을 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급기야 KAL기 피격사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되며 국제정치적 갈등 양상을 보였다. 소련이 안보리에서도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자 정부는 안보리 의장에게 옛 소련의 주장을 반박하는 서한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정부는 내부적으로는 옛 소련과의 갈등 수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서울 올림픽에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의 참가를 끌어냄으로써 서울 올림픽을 동서 화해의 장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정부 내부에서는 KAL기 피격사건을 둘러싸고 소련과 갈등을 계속할 경우 동구권 국가들이 종주국인 소련의 눈치를 봐 서울 올림픽에 대거 불참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외교문서에 포함된 당시 외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당국자 통화 기록에서 안기부 당국자는 "KAL기 사건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은 성공적인 올림픽 수행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라며 "언론에서도 가급적 KAL기 사건을 소규모로 다루거나 다루더라도 이미 지난 일로 작게 다루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동 사건을 크게 다룰 경우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 국가들이 서울 올림픽 참가 문제에 움츠러들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의 성공을 외교의 우선적인 목표로 삼은 전두환 정부의 기조는 한일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일본 총리의 한국 방문(9월 20∼21일)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서울 올림픽에 대한 지원 확보를 주요 목표의 하나로 삼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1986년 8월 25일 작성된 '나카소네 수상 방한 기본계획'이라는 제목의 외교문서에서 나카소네 방한 기본 목표의 첫머리에 '88 올림픽 성공을 위한 일본 정부의 지원 확보'가 적시됐던 것이다.
같은 해 9월 9일 실무 책임자인 외무부 아주국장의 자료를 보면 외무부는 의제별 대처 방향에 관해 "북한이 개헌 정국의 혼란화를 도모하고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무력 도발을 비롯한 온갖 수단을 획책할 우려가 있으므로 일본, 미국 등 우방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적었다.
또 "특히,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자제하고 소련 등 동구권의 올림픽 참석을 유도하는 데 외교적으로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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