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연합뉴스) 권훈 기자 =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이정은(21)은 우승의 감격 못지않게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딸의 경기 모습을 늘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 이정호(53) 씨가 그토록 고대하던 우승 순간에는 옆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이 씨는 휠체어를 탄 채 딸의 경기를 관전했다. 한때는 딸이 창피하게 여길까 봐 주차장에 세워둔 승합차 안에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지만, 프로 선수가 된 뒤에는 대부분 대회에서 코스를 돌았다.
그저 경기를 지켜보기만 한 게 아니다.
이정은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뒤부터 이 씨는 이정은의 운전기사 역할을 했다. 장애인용 승합차를 직접 몰았다.
이 씨가 딸이 첫 우승을 일궈낸 제주 롯데스카이힐 골프장엔 오지 않은 것은 전북 남원에서 열린 장애인 탁구대회와 일정이 겹쳐서다.
이정은은 "올해부터는 아버지를 놓아드리기로 했다"고 운을 뗐다. 수준급 장애인 탁구선수인 이 씨는 이정은이 신인이던 지난해에는 딸 뒷바라지로 탁구 채를 거의 잡지 못했다.
딸이 신인왕에 오르고 이제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한 이 씨는 탁구를 다시 시작했다.
대회장마다 따라다니며 딸을 보살피던 '업무'도 이제 그만 두기로 했다.
"우승 순간에 아빠가 옆에 없어 서운하기 했지만, 아빠도 자신의 삶이 있는 거니까…"라는 이정은의 눈에는 잠깐 이슬이 맺혔다.
이정은은 "아빠가 출전한 탁구 대회가 어디서 열리는지도 모른다"면서 "나도 대회 중이고 아빠도 대회 중이라 서로 부담되지 않게끔 일부러 전화 통화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출입구에 턱이 있어 휠체어가 드나들기 힘들었던 집에서 지난 2월 경기도 용인의 새 아파트로 옮겼다는 사실도 공개했다.이정은은 이번 우승으로 우승 상금 1억2천만원에 후원사가 제공하는 보너스와 벤츠 자동차를 받는다.
이정은은 "작년에 집을 장만했고 자동차도 새로 생겼으니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었던 걸 너무 빨리 이뤘다"고 기뻐했다.
"레슨 프로가 되면 밥벌이는 하지 않을까"라는 소박한 생각으로 골프를 시작한 이정은은 광주 유니버시아드 출전을 위해 프로 전향을 1년 늦췄다.
또래보다 1년 늦었지만 신인왕에 이어 프로 무대 첫 우승을 31번째 출전 대회에서 따낸 이정은은 올해 목표도 소박하기 짝이 없다.
이정은은 "작년에 초청 선수로 출전한 박인비 인비테이셔널에 자력으로 출전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와 KLPGA투어 선수들이 팀을 이뤄 겨루는 이 대회 출전 자격은 상금랭킹 10위 이내이다.
이정은은 지난겨울 태국에서 지낸 50일 동안 약점이던 100m 이내 아이언, 웨지샷 정확도를 끌어올리는 데 매진한 효과를 봤다고 소개했다.
"올해는 나만의 구질을 만들겠다"는 이정은은 "하나하나 목표를 성취해나가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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