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사시 합격→검찰 요직→朴정부 권력핵심→'국민 밉상'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9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우병우(50·사법연수원 19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적어도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화려한 인생'을 걸어왔다.
18살인 1984년 서울대 법대에 당당히 입학했고, 대학 재학 중인 1987년 만 20세의 나이로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최연소 합격자였다.
6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탓에 친구들보다 두 살이나 어린 데다가 사법시험도 재학 중에 패스해 이른바 '소년 등과'하며 일찍부터 '남다른 인생'을 예고했다.
1990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한 이후에는 검사생활 내내 동기 중 최선두권으로 평가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검사가 근무를 선호하는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법무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철두철미한 성격과 뛰어난 실력에 수사 역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특수통'으로 통했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에 파견돼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을 구속했고, 부산저축은행 대출비리사건 등 대형 특별수사에 참여했다.
기흥컨트리클럽 대주주인 정강중기 대표 고 이상달 씨의 딸을 아내로 맞으며 경제적인 면에서도 남부럽지 않았다. 장인은 생전에 우 전 수석이 수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한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 대검 중앙수사부의 중수1과장 시절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로 그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두 번 연거푸 탈락하며 2013년 검찰을 떠났다. 당시 세 번째 인사에서도 19기에서 검사장 승진자가 나왔지만 우 전 수석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더는 기다리지 않고 사직했다.
끝날 것만 같았던 그의 공직 인생은 2014년 5월 대통령 민정비서관 임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이듬해 최연소 민정수석으로 국내 '사정 라인'의 정점에 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참모로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검찰 조직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는 '사심 없는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존심이 세고 타협을 모르는 성향 탓에 검찰 내에서도 '호불호'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편 이번 국정농단 사태 수사 과정에서 우 전 수석은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오만하다고 비치는 태도로 '비난을 자초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검찰에 출석할 때에는 취재진을 쏘아보는 듯한 '레이저' 눈빛에 수사 검사 앞에서 팔짱을 끼고 웃는 모습이 포착돼 '황제 소환'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법망을 이리저리 빠져나갔고 급기야 '국민 밉상'으로 불렸다.
그런 여론을 의식한 듯 우 전 수석은 지난 6일 검찰 특수본에 재차 소환될 때에는 이전과는 달리 고개를 숙이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올해 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영장은 피해갔지만, 검찰의 구속영장 재청구는 피해갈 수 없었다.
권력의 최정점에서 물러난 뒤 수사기관에서 세 번 조사를 받았고 두 번째 구속위기에 맞은 우 전 수석이 이번에는 법망을 피해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taejong7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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