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이상·현진건…문인들의 분홍빛 사랑고백

입력 2017-04-11 09:19  

이효석·이상·현진건…문인들의 분홍빛 사랑고백

신간 '소설가의 사랑'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이등변삼각형의 절정에 있는 나로서는 한쪽 실을 버티고, 한쪽 실을 늦출 수도 없었다. (…) 모처럼 두 개의 사과를 앞에 놓고도 정지된 연애 풍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설가 이효석(1907∼1942)은 일본의 고급 여관에 머물 때 시중을 들던 두 여급 쓰야코·하루코와 삼각관계에 빠졌다. 얼굴이 작고 눈이 움푹한 하루코가 마음에 들었지만 정작 이효석에게 관심을 보인 쪽은 키가 크고 살결이 희끔한 쓰야코였다. 작가는 제 처지를 이등변삼각형의 꼭대기에 빗대며 미적지근한 연애를 했다. 서울에 돌아가면 사진을 부쳐달라는 둘의 부탁을 전부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효석은 삶에서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로맨티스트였다. 이런 편지도 썼다. "사랑하는 님이여! 나를 태우소서! 깨트리소서! 와싹 부숴버리소서! 아, 그 순간 나는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 것인가. 흩어지는 불꽃같이, 사라지는 곡조같이 아름다운 것이 또 어디 있겠소? 그 특권의 노예 됨이 내게는 도리어 영광이요."




'소설가의 사랑'(루이앤휴잇)은 이효석·이상·박인환·이광수·임화·현진건 등 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문인 열여섯 명이 사랑과 연애에 관해 남긴 글을 모은 책이다. 편지와 산문, 짧은 소설 등을 엮었다.

시인 이상(1910∼1937)이 1935년 두 살 연하의 소설가 최정희에게 보낸 연서는 문인의 연애편지 중 가장 유명하다. 당대 최고의 모더니스트 이상도 외사랑 앞에선 범부에 지나지 않았다.

"혹 내가 당신 앞에서 지나친 신경질을 부렸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나는 확실히 알았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소설가 현진건(1900∼1943)은 7∼8년 전 두어 번 지나친 한 부인의 수정같이 맑은 눈과 채송화 잎처럼 붉은 입 따위를 기억 속에 정확히 복원해내고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이런 것을 적어서 대체 뭘 하잔 말인가. 여기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예찬한들 무엇에 쓸 것이냔 말이다." 김현미 엮음. 200쪽. 1만3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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