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렌즈에 잡힌 새들의 짝짓기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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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연합뉴스) 유형재 기자 = 봄이 완연해지면 산과 들, 호수 등 여기저기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봄이면 새들도 짝짓기가 한창이다.
강릉 경포호와 인근에서 이뤄지는 새들의 사랑을 일명 ‘대포’로 불리는 망원렌즈를 단 카메라로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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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위의 춤꾼' 뿔논병아리
동해안의 대표적 석호인 강릉 경포호에서는 혼인 깃으로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뿔논병아리의 구애 세리머니가 유별나다.
뿔논병아리는 전체 몸길이가 55cm 정도로 논병아리 종류 가운데 가장 크다.
국내에서 뿔논병아리는 비교적 흔히 만날 수 있지만 이들의 구애 세리머니를 보기는 쉽지 않다.
뿔논병아리는 사자처럼 화려한 갈기(깃)를 가진 데다가 특이한 애정표현으로 생태 사진작가는 물론 운동 나온 시민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봄이 시작되면 여러 마리의 뿔논병아리가 서로 짝을 찾는다.
그러나 짝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거리곤 한다.
그렇게 사랑을 찾아 나섰던 암수가 드디어 짝을 만났다.
마음이 통한 한 쌍의 뿔논병아리 세리머니가 요란해진다.
"내 사랑을 받아주오!"
화려한 뿔 깃과 갈기, 털을 잔뜩 세우고 서로에게 다가가 잘 보이려는 듯 털을 고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거나 부리를 맞대며 '하트'를 만든다.
수놈은 자신의 몸을 잔뜩 부풀리고 날개를 활짝 펴 최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애쓴다.
서로에게 사랑을 받아 달라는 듯 이런 애정표현을 한동안 계속한다.
그러다 약속이나 한 듯 암수 모두 물속으로 들어가 수초를 물고 올라온다.
서로 까치발을 하고 마주 보며 아프리카의 동물인 미어캣이나 극지방의 펭귄처럼 몸을 잔뜩 세운 채 한참 동안 몸을 맞대고 비비는가 하면 수초를 얼굴에 문지르고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등 사랑을 한껏 발산한다.
보기만 해도 사랑이 잔뜩 묻어난다.
사람들이 꽃다발로 연인의 환심을 사려는 행동과 비슷한 거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의 프러포즈보다 훨씬 애절하게 느껴진다.
이런 구애 세리머니는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먹이 활동을 하다가도 다시 이런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다가도 자신들 있는 곳으로 다른 놈이 접근하면 몸을 잔뜩 엎드린 낮은 포복 자세의 전투태세로 곧바로 쫓아 버린다.
마음이 맞아 서로 갖은 교태를 부리다가도 다른 한쪽에서 수초를 물고 나오지 않고 자신만 수초를 물고 나오면 대부분 가차 없이 수초를 버린다.
냉정하게 보이지만 서로의 존중으로도 풀이된다.
자태가 고운 뿔논병아리가 온 정성을 쏟으며 진솔하게 애정을 나누는 모습이 사랑을 느끼고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하트 춤이나 펭귄 춤을 추는 화려한 구애 세리머니 때문에 뿔논병아리는 '물 위의 춤꾼'으로도 불린다.
이렇게 짝을 정한 뿔논병아리는 본격적인 애정행각을 벌이고 갈대와 부들을 이용해 물 위에 둥지를 지어 알을 낳고 새 생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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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툭하면 '19禁 행동' 청둥오리
봄이 시작되기도 전에 호수와 강, 하천, 저수지에서는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청둥오리의 애정행각이 시작된다.
경포호에서 이들의 사랑은 시도 때도 없다.
마음이 맞는 암수 한 쌍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랑할 준비가 됐음을 알린다.
암놈은 물에 납작 엎드리고 수놈은 얼른 올라탄다.
수놈은 암놈의 머리를 물고 사랑놀이를 한다.
이들의 사랑은 순식간이다.
수놈은 부끄러운 듯 암놈 주변을 한번 빠르게 뱅 돌고는 큰 날갯짓을 한다.
청둥오리는 툭하면 이런 19금 행동을 한다.
얼마나 급한지 수놈끼리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암놈한테 발각됐다.
순간을 지켜본 암놈의 심술이 표정에서 묻어난다.
눈초리도 매섭다.
흔치 않은 동성애 장면은 필자의 카메라에도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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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비비며 애정 확인하는 장다리물떼새
경포호 인근의 하천에서 먹이 활동이 한창인 무리 가운데 장다리물떼새 한 쌍이 어느 순간 서로에게 다가서고 이어 수컷은 부리로 물장구를 치며 구애를 한다.
장다리물떼새는 우리나라에는 아주 드물게 도래하는 희귀한 철새다.
서로 몸을 비비며 사랑을 확인한다.
유난히 긴 다리 탓에 짝짓기 자세를 취하고도 한동안 자리를 잡는 시간이 지나야 사랑이 이뤄진다.
장다리물떼새는 짝짓기한 뒤 서로의 목과 몸을 비비는 행동이 매우 애틋하면서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꼭 찍고 싶은 장면의 하나로 꼽힌다.
빨강 스타킹을 신은 것처럼 유난히 긴 빨간 다리를 뽐내며 모델처럼 우아하게 걷는 모습이 일품이다.
그러나 조류 세계에서도 사랑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 뒤에서 갑자기 날아온 장다리물떼새 한 마리가 앞발 차기를 시도하며 훼방을 놓았다.
어느 세상에나 그런 훼방꾼은 있는 모양이다.
짝짓기하던 중 깡패 같은 동료에 걷어차인 장다리물떼새는 깜짝 놀라 자세가 흐트러졌고 아쉽게도 사랑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들의 사랑은 한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끝내 이뤄졌는지도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 갈매기의 사랑이 이뤄지는 경포호
바다와 접한 경포호는 갈매기의 사랑이 이뤄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먹이가 풍부해 각종 오리류와 물닭, 왜가리, 백로, 가마우지의 사냥터다.
갈매기는 이곳에서 물닭이나 오리가 잡은 작은 물고기와 조개류를 기를 쓰고 끝까지 쫓아가 빼앗아 먹는 일종의 조폭이다.
그런데 크기가 작은 돌에 바짝 붙어 앉은 갈매기 한 쌍의 모습이 심상찮다.
다른 때 같으면 먹이를 놓고 서로 먹으려고 머리를 물기까지 하는 등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물고기를 물고 와서는 쓱 옆으로 밀어 놓기도 한다.
그렇게 하더니 대사가 이뤄졌다.
한동안 등에서 중심을 잡는다.
그러다 격정의 사랑은 시작됐다.
암컷이 작은 돌에서 미끄러져 물로 떨어졌는데도 내려올 줄 모른다.
어른 주먹보다 작은 크기인 모래밭의 꼬마물떼새도 전깃줄의 참새도 새로운 생명을 만들기 위해 한창 바쁜 시기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yoo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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