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북핵 6자 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한 이틀째인 11일 일부 대선 주자를 비롯해 정계 인사들을 잇달아 접촉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 이어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선대위의 송영길 총괄본부장, 심재철 국회부의장 등을 만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북핵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12일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만날 것으로 전해졌다. 우 대표는 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면담하기를 희망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다가 우 대표가 4박 5일 일정의 대부분을 정계 인사 접촉에 할애할지도 모르겠다.
우 대표는 방한 첫날 윤병세 외교장관을 예방하고, 우리 측 6자 회담 수석대표인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북핵 협의를 했다. 하지만 진짜 방한 목적은 북핵 협의가 아니라 각 '대선캠프' 탐색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드 문제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생각을 듣고 중국의 입장을 전달하는 게 주목적이 아니냐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외교 활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외교가에선 대선 후보들을 돌아가며 공개적으로 접촉하는 행태가 우리 정부를 무시하는 외교적 결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 대표와 함께 방한한 천하이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도 지난해 말 한국을 찾았을 때 비슷한 형태를 보였다. 중국 외교부에서 사드 문제를 담당해온 천 부국장은 당시 우리 외교부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방한해 국내 유력 정치인과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났다. 실무자급 외교관이 우리나라를 휘젓고 다니면서 '사드 반대' 여론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샀다.
지난 4일 귀임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를 만나 한일 위안부 합의 준수를 촉구하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상대국과 사전 조율도 없이 일방적으로 '면담 계획'을 공개한 것은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이 일었다. 그는 다음 날 외교·통일·국방장관에게 줄줄이 면담 신청을 했으나 모두 보류됐다. 지난달 20일에는 미국 측 북핵 6자 회담 수석대표인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해 공개적으로 대선 주자 측 관계자들을 잇달아 접촉했다. 윤 대표는 우리로 치면 외교부의 국장과 차관보의 중간쯤 되는 부차관보이다. 격(格)이 맞느냐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게 대통령 궐위 상태에서 조기 대선을 앞둔 한국 외교의 현실이다. 외교에서 국격은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대선 주자가 직급상 현격한 차이가 나는 사람을 만나면 단지 자신의 위신만 손상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정부는 물론 고위 외교관리들까지 권위를 훼손당할 수 있다. 외교는 내용 못지않게 형식과 의례가 중요하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외국 정부의 관리를 만날 때 국격에 맞는 처신을 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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