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인 어머니, 이혼 후 우울증·알코올 중독증
(동두천=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지난달 말, 동두천시에 있는 어린 조카들의 집을 찾은 A(40ㆍ여)씨는 집안에 들어가는 순간 기겁을 해야 했다.
초등학생 2명과 4살 아이가 사는 집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집안이 더러웠기 때문이다. 각종 가재도구는 전혀 정리되지 않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제대로 처리가 안 돼 초봄임에도 벌레가 들끓었다. 사용한 여성 위생용품이 집안에 굴러다니기도 했다.
오랜 기간 조카들과 교류가 없던 A씨는 아이들의 어머니인 B(35)씨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소문을 듣고 집을 찾은 참이었다. 방문 당시 B씨는 낮임에도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상태였다. 어린 조카들과의 대화를 통해 아이들이 방임됐다고 판단한 A씨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결과 방임은 수년에 걸쳐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몽골인인 어머니 B씨는 20대 초반 한국에 와서 식당일을 하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13년 전 첫째 아들을 출산한 이후 이듬해 둘째 아들까지 태어났고 가정생활은 순탄해 보였다. 하지만 2011년 무렵, 남편과 사이가 나빠져 결국 이혼하게 되면서 B씨의 가정에 위기가 시작됐다.
4년 전 막내딸이 태어났지만, 이 시기 전 남편이 범죄를 저질러 구속됐다. 남편 외에는 한국에 별 연고가 없는 B씨는 세 자녀를 떠안은 채 사실상 고립됐다.
이들 가족은 경기도 양주시에서 살다 약 9개월 전 동두천으로 이사왔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들이 현재 열악한 집에서 지낸 지는 9개월이 됐지만, B씨의 상태로 봤을 때 양주에 살던 시절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B씨의 사법처리를 위해 방임 기간을 현재까지 확인된 9개월로 잡았지만, 아이들의 진술로 보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4년전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B씨는 4년간 별다른 직업 없이 기초생활 수급 지원비만 받아 대부분 술값으로 쓴 것으로 확인됐다. 막내딸이 4살이 됐지만, 어린이집에도 보내지 않고 집안에 방치했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이 시기에 필요한 부모의 각종 지원은 거의 받지 못했다. 학교에 빠지는 일도 잦았다.
B씨의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 증세가 점점 심해지며 그나마 챙겨주던 아이들 식사 준비도 거르기 일쑤였다. 어린 자녀들은 어머니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으면 집 근처 복지시설에서 끼니를 해결하고는 했다.
더러운 집안에 아이들이 방치됐지만, 이웃에서는 눈치도 채지 못했다. 낡은 연립주택에 살던 이웃들은 각자 살기에 팍팍했고, 폭행 등 물리적 학대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도, 지역 복지기관에서도 방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지역사회의 이런 무관심 속에 아이들은 철저히 고립됐다.
오랜 기간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한 세 자녀는 모두 항상 몹시 불안해하고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등 정서적 문제를 보였다. 더는 이 가정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자녀들을 아동전문기관으로 보내 보호하는 한편, 어머니와도 격리조치했다.
또, B씨의 수사를 진행하면서 시청 등 유관기관과 함께 '현장 솔루션팀' 회의를 열어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B씨와 자녀들에 대한 심리상담 치료를 지원키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12일 "방임 사실을 빨리 인지했다면 일찍 조치가 이뤄질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며 "B씨에 대한 사법처리와는 별도로 향후 이들 가정을 위해 유관기관과 주거지 개선 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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