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일 민감한 시점에 묘한 전화통화를 했다. 지난주 정상회담 이후 불과 나흘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칼빈슨호 등 핵항모 전력이 한반도를 향해 이동 중인 상황이기도 했다. 지난주 정상회담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듯한 두 정상 간 통화에서 초점은 단연 북핵 문제였다.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통화 내용을 먼저 상세히 공개한 쪽은 중국이었다. 외교 관례상 중국 측이 통화를 원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관영 CCTV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시 주석은 먼저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 평화·안정 유지를 견지하는 한편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힘이 아닌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핵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 본인이 전면에 나서 북핵 문제에 대응할 것임을 시사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 주석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미국과 지속해서 소통하고 협조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대북 경고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고, 핵항모 전력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 시 주석한테 부담이 됐을 수 있다. 이처럼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북한이 또 핵 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을 자행하면 시 주석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질 것이 분명하다. 시 주석으로서는 일단 미국을 달래 혹시 강행될지도 모를 군사적 행동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을 것 같다.
오는 15일은 북한의 최대 명절이자 기념일인 태양절(김일성 생일)이다.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로 꼽힌다. 핵항모 칼빈슨호의 재배치가 유사시 북한의 ICBM을 요격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항모 전단이 이동하는 도중에도 트위터 등을 통해 대북 경고 메시지를 잇따라 내놨다.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이 직접 해결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맞서 '모든 옵션을 열어 놓고 있다'고 경고했다. 외교적 표현에서 '모든 옵션'은 군사적 대응도 포함한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시리아에서 보여줬듯이 행동에 나설 때는 단호하고 비례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비례적'이란 말은 도발 강도에 따라 대응 강도를 맞춘다는 뜻이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의 분위기도 달라지는 듯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12일 "점점 더 많은 중국인이 대북제재 강화를 지지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또 '마지노선'을 넘으면 원유공급 중단 카드를 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 신문은 사설 제목부터 '결전 앞둔 북핵 문제, 북한 멈춰서야'로 뽑았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북한 문제를 훨씬 더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공은 북한 쪽에 넘어갔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핵 보유권의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ICBM은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수단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음을 알아야 한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핵보유국 북한'을 트럼프 대통령이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이 계속 북한을 편들기도 어려워졌다. 환구시보는 대북 송유 중단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지금 같은 상황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ICBM을 발사하면 '많은 사람 앞에서 미국의 뺨을 때리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위신과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에서 이런 비유는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뜻이다. 북한이 완전히 달라진 주변 정세를 오판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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