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 유엔 내부보고서 공개…12년간 성범죄 2천건 중 극소수만 단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피해자 1'로 명명된 아이티 소녀.
소녀는 12살부터 15살 사이에 자신에게 75센트를 준 '사령관'을 포함해 유엔평화유지군 50명과 성관계를 했다.
소녀는 심지어 유엔 기지 안에 있는 트럭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소녀는 "당시에 저는 가슴조차 없었다"고 유엔 조사관에게 털어놨다.
카리브 해의 빈국 아이티 등을 비롯해 전 세계에 파견된 유엔 평화유지군이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대부분 처벌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이 공개한 유엔의 내부 조사 보고서와 자체 탐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아이티 주둔 평화유지군이 저지른 150건의 성폭행과 성 착취가 보고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평화유지군의 파견국은 방글라데시, 브라질, 요르단,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우루과이, 스리랑카 등이었다.
아이티에 파견된 스리랑카 소속 평화유지군 중 최소 134명이 2004년부터 2007년 사이에 9명의 어린이를 성 착취했다.
이런 혐의로 114명의 평화유지군이 본국으로 송환됐으나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AP통신은 자체적으로 조사해보니 지난 12년간 전 세계적으로 유엔 평화유지군과 직원들이 저지른 성범죄와 착취는 약 2천 건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 중 300건 이상이 어린이와 연관됐으나 극소수만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범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유엔 평화유지군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각국이 자체적으로 파견하므로 유엔은 평화유지군에 대한 직접적인 사법권이 없다.
범죄에 대한 처벌은 파견 국가의 사법체계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 유엔 회원국 간의 광범위한 개혁과 책임에 대한 합의가 없는 한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다고 AP통신은 진단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3월 유엔 평화유지군과 직원들의 성범죄와 착취를 막기 위해 새로운 조치를 발표했다.
구테헤스 사무총장은 당시 "우리는 성 착취와 학대를 저지르거나 묵인하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그 누구도 유엔의 깃발 아래 이런 범죄를 은폐하도록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구테헤스 사무총장이 밝힌 조치와 각오는 10년 전에 발표된 것과 유사하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개혁이 현실화되지 않았다고 AP통신은 꼬집었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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