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주 경찰관 테리 벅 "농아인 설득해 큰 성과 인상적…피해자 사후관리 절실"
(창원=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미국엔 '피해자 대변인'(Victim's Advocate) 제도가 있습니다. 이 제도 덕분에 일반인들이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들도 안 좋은 기억을 털어내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https://img.yonhapnews.co.kr/etc/inner/KR/2017/04/14//AKR20170414145700052_01_i.jpg)
전국 농아인 수백여명으로부터 280억원 가량을 뜯어낸 농아인 사기단 '행복팀' 피해자들의 심리안정과 사회복귀를 위해 사후관리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조언이 현직 미국 경찰관으로부터 나왔다.
미국 유타주(州) 경찰서 수사과에 근무 중인 테리 벅(45)씨는 지난 13일 '행복팀' 사건을 전담한 경남 창원시 창원중부경찰서를 찾아 '행복팀' 사건 관련 설명을 들었다.
미국 입양아인 그는 한국의 농아인 친구로부터 우연히 '행복팀' 관련 얘기를 듣고 자신의 업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그는 "'피해자 대변인'이란 특정 사건이 발생한 뒤 피해자들의 정서적 안정, 트라우마 치료 등을 위해 심리상담을 해주는 제도"라며 "농아인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NAD(National Association of the Deaf) 같은 기관도 있어 관련 전문가를 쉽게 섭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사건 해결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지만 피해자 사후관리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며 "농아인 사기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전문 상담가가 피해자 심리안정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아인 사회는 폐쇄적이고 외부인에게 적대적 경향이 있는 '닫힌 사회'다.
어려서부터 농아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비장애인들로부터 차별받거나 소외당한 경험 때문에 대부분 자신의 커뮤니티 내에서 제한적 사회활동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같은 농아인에게 거액의 사기를 당했다는 충격에서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 자신들의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까지 겹쳐 수사기관의 발표를 불신하고 '행복팀' 조직원들의 회유에 다시 넘어가는 경우까지 있다.
문제는 피해자 사후관리 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현실에서 피해 농아인들의 심리상담은커녕 피해액 환수도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농아인을 대변하고 권익을 보호해야 할 농아인협회도 예산이나 전문가 등 피해자 사후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에 일부 피해 농아인들은 농아인협회 몇몇 간부가 '행복팀'과 연루됐다는 주장마저 하고 있다.
테리 벅 경찰관은 "심리적 타격에 재산문제까지 겹치면 좌절감을 느낀 일부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며 "법은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관련 제도의 정립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관대한 사회 분위기와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소수자에게 관대한 사회로 농아인 같은 장애인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아시아계인 나도 일상생활에서 의식적 차별 없이 지내며 가정을 꾸리고 번듯한 직장까지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창시절부터 장애인과 짝을 지어 수업하는 '피어 튜터'(Peer Tutor) 제도나 장애인 지원단체인 'HIVE' 같은 단체가 잘 발달해 농아인도 비장애인과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라며 "비장애인도 장애인을 자신과 다르지 않은 인격체로 보고 동정을 한다든지 과도한 배려를 하지 않고 편하게 대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국 경찰이 '행복팀' 사건을 수사하며 거둔 성과에 대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 경찰의 '행복팀' 수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피의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기 위해 수화통역사를 현장까지 데리고 다닌 부분은 미국 입장에서도 배울 만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외부인에 대한 불신이 큰 피해 농아인을 설득해 신고를 하게 만든 점은 같은 경찰 입장에서 봐도 놀랍다"며 "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사건에 집중한 결과 음지에서 암약하던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느냐"고 수사팀을 치켜세웠다.
home122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