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적금을 부어봤자 돈이 안 되고, 주식은 불안하잖아요. 요즘같이 불안정한 시대에 금만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종로3가 일대 금은방 거리에서 만난 임모(42)씨는 브랜드별 골드바 가격을 줄줄이 정리해 놓은 수첩을 보여주며 이렇게 주장했다.
매달 한두 번씩 주말에 시간을 내 '시장 조사'를 나온다는 임씨는 "은행에 다니는 지인이 매달 소액씩 금에 투자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금을 현물로 조금씩 사들이기 시작했다"며 "주식도 해봤지만 원금 손실 위험이 너무 큰데, 금 현물은 설사 전쟁이 나더라도 오히려 가치가 올라가니 장기적으로 더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이 요동치면서 '금테크'(금과 재테크를 합친 말)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금거래소와 한국표준금거래소 등을 포함한 십여 개에 달하는 민간 금 거래업체들이 중량 1g짜리 '골드스푼'과 같은 선물용 제품부터 스마트폰 크기의 중량 1kg짜리 골드바 등 보관이 쉽고 휴대가 용이한 '미니 골드바' 제품을 앞다퉈 출시하면서 골드바 수요도 늘고 있다.
전날 기자가 찾은 종로3가 일대 금은방이나 금 거래소에는 대체로 결혼 예물을 문의하는 커플들이 많았지만, '금 시세가 얼마나 올랐느냐'며 소장용 골드바 판매 여부를 묻는 손님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손녀 돌반지를 사러 나왔다는 이진무(62)씨는 "최근에 금값이 오르고 있다길래 종로에 나온 김에 조금이라도 사놓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골드바 가격을 알아보고 있다"며 "마침 얼마 전 만기 된 적금 통장이 있어 금값이 더 오르기 전에 100g짜리 골드바를 하나 사려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금의 '위력'을 익히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힘주어 말했다.
민간 금 거래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한국금거래소 종로본점에도 금 시세와 골드바 가격 등을 문의하는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오고 있었다.
금거래소 직원은 "매장을 직접 방문하는 손님은 하루 평균 15명 내외인데, 자기 자산이 노출된다는 생각에 매장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걸 꺼리는 손님들이 많고 택배로도 구매가 가능해 전화 문의가 훨씬 많다"며 "바쁜 날에는 하루에 문의 전화가 100통 넘는 것은 기본"이라고 전했다.
이 직원은 "그간의 추세를 보면 국내외 정치·경제가 불안할 때 구매량이 늘어나고, 최근에도 전쟁위기설 등 북한 관련 뉴스가 많이 보도되면서 문의 전화가 확실히 많아졌다"고 말했다.
20~30대 직장인 중에서도 금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다만 현물로 금을 모으는 것 대신 주식처럼 시세 차익을 노리고 투자를 하는 방식의 금테크가 인기다.
대표적으로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KRX금시장은 지난 2014년 3월 24일 개장 이후 약 3년간 일평균 금 거래량이 21.8㎏으로 2014년 5.6㎏의 약 3.9배로 증가했다.
입사 5년 차인 직장인 강모(29)씨도 올해 초부터 KRX금시장에서 매달 몇 g씩 금을 사고 있다.
강씨는 "회사에 다니고는 있지만, 국민연금만으로 노후가 보장될 것 같지 않고, 연금저축에 20만 원씩 넣더라도 30년 뒤에도 그 돈이 같은 값어치일 것 같지는 않다"며 "금은 1970년대나 지금이나 팔면 값어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요즘처럼 한반도 정세가 불안한 데다 연금저축 등이 물가 상승을 반영 못 할 때, 금은 몇 g만 있어도 먼 미래에도 최소 용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 투자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금값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금값이 1돈(3.75g)에 28만 원대로 정점을 찍었던 2011년보다는 낮은 수준"이라며 "금 시세는 국내외 상황이 불안정할수록 오히려 올라가는 특성이 있으므로 당분간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감에 금을 사려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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