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권자 채무재조정 성공시 2.9조원 지원받아 유동성 위기탈출
실패하면 P플랜 직행…선박 발주 취소규모에 따라 피해규모 갈려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대우조선해양[042660] '운명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17∼18일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회사채 투자자들이 채무 재조정에 찬성해야 대우조선은 신규 자금 2조9천억원을 지원받아 유동성 위기를 넘기게 된다.
사채권자들이 채무 재조정에 반대한다면 대우조선은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Pre-packaged Plan)으로 직행하게 된다.
두 가지 모두 대우조선의 몸집을 줄여 생존 가능한 회사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시도다.
채무 재조정을 전제로 한 자율적 구조조정은 급작스러운 충격을 주지 않고 '소프트랜딩(연착륙)'시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P플랜은 처음 시행되는 데다 일종의 디폴트 선언이라는 점에서 예기치 못한 '경착륙'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 성공하면…이달 말 신규자금 지원 시작
대우조선은 17∼18일 모두 다섯 차례의 사채권자 집회를 연다.
이들 회사채에는 '한 곳에서 지급불능이 발생하면 다른 채권자도 일방적으로 지급불능을 선언할 수 있다'는 크로스 디폴트(cross default·연쇄지급불능) 조항이 걸려 있어 대우조선은 이틀 내내 살얼음판을 걸어야 한다.
국민연금·우정사업본부·사학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회사채 1조3천500억원 중 50%를 출자전환(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받는 것)하고 나머지 50%는 만기를 3년 연장해 주면 대우조선은 큰 고비를 넘기게 된다.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 가결을 조건으로 시중은행도 무담보채권 80% 출자전환, 20% 만기 연장에 동의했기 때문이다.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무담보채권 1조6천원을 100% 출자전환하게 된다.
사채권자 집회가 성공하면 산은·수은은 이달 말에 바로 대우조선에 대한 한도성 대출을 시작할 계획이다.
대우조선의 유동성 위기를 촉발한 21일 만기 회사채(4천400억원) 상환을 유예한다고 해도 월말 부족자금이 800억∼900억원 발생하기 때문이다.
수은·산은이 지원하는 신규 자금 2조9천억원은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처럼 쓸 수 있는 개념이다.
우선 대우조선의 자구 노력으로 부족자금을 충당한 뒤 그래도 모자라는 돈만 마이너스통장에서 꺼내 쓰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신규 지원 자금은 대우조선의 선박 건조 등 운영비와 협력사 납품대금 결제 용도로 먼저 쓰인다.
국책은행과 시중은행, 사채권자는 상반기 중 출자전환도 마무리할 예정이다.
출자전환 규모는 총 2조9천100억원이다.
출자전환이 마무리되면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천732%에서 300%가량으로 떨어진다.
금융당국 계획대로 채무 재조정이 진행되면 대우조선 보유지분은 ▲산업은행 56% ▲사채권자 17.5% ▲ 시중은행 13.5% 등으로 정리된다.
지금은 산은이 79%를 보유하고 있으며 금융위는 3.5%, 소액주주가 16.4%를 들고 있다.
금융당국은 출자전환을 통해 재무 구조를 개선하면 대우조선이 올해 9월 한국거래소의 상장 실질 심사를 통과해 주식 거래를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몸집 줄어 2018년 말부터 M&A 시도
정부와 산은은 채무 재조정과 신규 자금 지원이 마무리되는 대로 대우조선 경영정상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우선 내년 말까지 자회사 대부분을 매각하고, 현재 1만명인 직접고용인력(정규직)을 2018년 상반기까지 9천명으로 축소해 몸집을 줄이기로 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해양플랜트 사업은 사실상 정리하고, 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선박과 잠수함 등 방위산업에 주력하는 구조로 사업을 재편한다.
이런 계획이 차질없이 이뤄지면 대우조선 매출은 2021년 6조∼7조원으로 줄어든다. 지금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와 산은은 경영정상화를 거쳐 내년 말부터 대우조선 매각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지금의 현대중공업·대우조선·삼성중공업 '빅3' 체제를 '빅2' 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산은은 "빅3의 독자생존 방식으로는 공급 과잉과 호황기에 고착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빅3 간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M&A(인수·합병)를 통한 업계 재편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실패시…21일께 P플랜 신청 '미지의 길'로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 재조정 안건이 부결된다면 대우조선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 P플랜에 들어가야 한다.
P플랜은 법정관리의 장점인 법원의 강제성 있는 채무조정과 워크아웃의 신규 자금 지원 기능을 결합한 것으로, 지난달 막 회생법원이 출범하며 걸음마를 뗀 제도다.
단기 법정관리를 통해 채무 재조정을 한 뒤 기업을 다시 워크아웃 절차로 되돌려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회생 계획안을 미리 짜 놓은 뒤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때문에 절차가 신속하다는 게 장점이다.
P플랜에 대비한 회생계획안 작성을 완료한 금융당국과 산은은 채무 재조정 실패 시 대우조선을 이달 21일 전후로 P플랜에 집어넣을 계획이다.
법원 인가는 최소 4주일에서 길게는 3개월 가까이가 소요된다.
P플랜에 돌입하면 일단 법원 주도로 강도 높은 손실 분담 작업(채무 재조정)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금융권 손실 예상액은 4조4천억원으로 추정된다. 자율적 구조조정 시 손실액 3조1천억원보다 1조3천억원가량 많다.
손실액으로 따지면 수출입은행이 1조5천억원으로 가장 많고 국민연금 등 회사채가 1조3천500억원, 시중은행은 9천억원이다.
그러나 채권액 대비 손실률을 따지면 회사채 투자자는 원금의 90%를 까먹게 돼 손실률이 가장 높다.
산은과 금융당국은 대우조선에 3조3천억원 이상을 신규 투입해 짓던 배를 완성해 내보내고, 발주 취소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P플랜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발주 취소 물량과 수주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회생에 방점을 찍는 구조조정 방식이라지만 P플랜도 법정관리의 일종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선주들이 무더기로 선박 발주를 취소하는 경우가 가장 큰 문제다.
실사 결과 P플랜 신청 시 8척 정도의 발주 취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난해 말 현재 대우조선 수주 잔량 114척 중 96척에 부도시 주문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P플랜이 선언됐을 때 발주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나설 선주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피해 금액은 극과 극을 달리게 된다.
조선업황이 좋지 않은 데다 국제유가 역시 오를 조짐이 보이지 않아 대우조선이 P플랜 돌입 이후 신규 수주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발주 취소 규모가 늘어나고, 신규 수주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 대우조선은 더 큰 폭으로 인력 감축을 할 수밖에 없다. 협력업체와 지역경제 피해도 함께 커진다.
cho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