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부인이 챙겨준 국과 밥 먹고 강행군 나서
베레모 쓰고 "군대도 안 갔다온 사람들, 안보 얘기 말라"
"대구 일어서면 세상이 디비진다" TK서 지지 호소
(대구·대전·수원·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19대 대선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17일 야당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첫 유세를 마치고 다음 유세 지역인 대전으로 가는 KTX에 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손에 작은 편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열차 좌석을 찾아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기자가 '대구에서 첫 유세를 마친 소감이 어땠느냐'고 묻자 지지자가 건네준 것으로 보이는 편지를 든 채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고서 안경을 벗고 편지에 쓰인 글자들을 바라봤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유세 현장에서 지지자들이 건네준 편지같은 건 평소에도 꼼꼼히 읽어 보신다"며 "지지세가 약한 지역에서 받은 편지이니 더 각별하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두 번째 도전인 이번 대선에 임하는 각오가 더욱 절박하다고 강조해 온 문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은 듯했다.
한 번이라도 더 악수하고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마주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문 후보는 이날 자정 공개한 동영상을 통해 "제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 될 것"이라며 "조국과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이야기한 터였다.
그만큼 문 후보에게는 마지막까지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더 얻겠다는 각오로 선거운동에 임한다는 뜻이라는 게 문 후보 측의 설명이다.
편지를 읽기 전 잠시 문 후보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창밖에서 그를 배웅하던 임대윤 대구지역 선대위 상임위원장이었다.
임 위원장은 열차가 떠날 때까지 지지자들과 함께 서서 문 후보가 보이는 플랫폼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잘 가라고 인사했다.
문 후보는 1분 남짓 임 위원장과 지지자들을 바라보며 엄지를 세우기도 하고 "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기도 했다.
문 후보는 열차가 동대구역을 떠난 뒤에야 마음 놓고 제대로 편지를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길거리 유세에서 마이크를 잡고 해야 할 말도 많고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지지자와 당직자들까지 챙겨야 하는 강행군을 경험해 본 문 후보는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그래서 이날 새벽 동대구로 떠나는 기차를 타러 집에서 떠나기 전 부인인 김정숙 씨가 손수 차려준 '집밥'으로 든든하게 에너지를 보충한 뒤 푸른색 타이를 매고 나섰다고 한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새벽 일정이라 여사가 준비한 국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고 새벽 6시께 집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첫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으면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써야 한다는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힘을 내기가 쉽지 않을 뻔했다.
유세문 점검에 참모들의 이런저런 보고를 받다 보니 이날도 점심은 대구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KTX 안에서 보좌진이 사다 준 빵으로 해결했다.
이날 문 후보의 첫 행선지는 대구 달서구 두류동에 있는 2·28 민주의거 기념탑이었다.
문 후보의 차량이 기념탑 앞에 도착하자 지지자들과 선거운동원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런 환호를 뒤로하고 문 후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향한 곳은 맞은 편에서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장애인이 앉아있는 자리였다.
형제복지원 복지 참사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든 채 기다리던 장애인에게 달려간 문 후보는 먼저 악수를 하고 그들을 격려했다.
다시 길을 건너 기념탑 쪽으로 온 문 후보는 밀물처럼 몰려드는 지지자들과 선거운동원들에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사진 촬영, 악수 요구에 할 수 있는 한 많이 응해준 문 후보는 그런 요청이 싫지 않은 듯 얼굴에는 잔잔한 웃음이 감돌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문 후보는 우산을 들어주겠다는 참모의 얘기도 마다한 채 손수 우산을 든 채 2·28 기념사업회 의장인 노동일 전 경북대 총장과 기념탑 참배를 마쳤다.
비행기와 KTX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동 시간을 보내는 밴은 '이동 사무실'이다.
밴 안에서 문 후보는 다음 일정에서 이야기할 유세 내용과 공약들을 꼼꼼하게 체크하며 최종 회견문 등을 가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28 민주의거 기념탑 참배를 마친 문 후보는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 가서 일자리 정책을 발표했다.
참모들이 준비해 준 회견문에는 없던 내용이었지만 문 후보는 마지막 인사 직전 '애드리브'로 "이 정도면 대한민국 일자리 문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으며 업체 직원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문 후보는 경북대로 자리를 옮겨 공식 선거운동 시작 후 첫 유세에 나섰다.
문 후보 지지세가 두터운 20대 젊은 층이 모인 곳이어서인지 유세차 앞에 모인 시민들은 "잘 생겼다", "나라 확 바꿔주세요"를 외치며 문 후보의 이름을 연호했다.
모두가 문 후보의 유세를 기다리던 순간 문 후보는 마이크를 '꼭 할 말이 있다'며 다가온 한 남성에게 넘겼다.
자신을 '특전동지회 대구지부 회원'이라고 소개한 이 남성은 "애국심과 안보관으로 똘똘 뭉치신 문 후보가 촛불민심을 지켜 주시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외치자 문 후보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남성이 특전사를 상징하는 베레모를 씌워주자 문 후보는 지지자들을 바라보고 거수경례로 화답했다.
마이크를 잡은 문 후보는 대구 민심을 향해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들, 저 문재인 앞에서 안보 얘기 하지 마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의 텃밭에서, 보수진영 지지자들이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하는 '안보 불안'의 이미지를 털겠다는 의도였다.
문 후보는 "제가 만든 대구구호 한 번 같이 해볼까요"라며 "대구가 일어서면! 역사가 바뀐다! 대구가 일어서면! 세상이 디비진다!"라고 외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문 후보는 이날 유세 일정을 소화하며 유세차에 오를 때마다 자신을 응원하러 모여준 의원들과 함께했다.
5년 전 당 밖의 인사들이 주축이 돼 유세를 다녀 현역 의원들이 유세차에 오르지도 못해 소외감을 느끼는 등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읽혔다.
경북대 유세에서 문 후보는 "저의 정치적 동반자이고 정권교체뿐만 아니라 앞으로 국정운영에도 힘을 보태주실 분"이라면서 김부겸 의원의 이름을 같이 연호하자고 제안했다.
대전 지역 유세에서도 유세차 위에는 공동선대위원장인 박병석 의원과 우상호 원내대표를 비롯해 박범계 조승래 표창원 박주민 제윤경 의원 등이 함께 올랐다.
문 후보는 수원을 거쳐 '촛불민심'의 진원지이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열흘간 단식농성을 했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선거운동 첫날 일정을 마쳤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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