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발굴20년] "백제 푸는 열쇠…세계유산 등재요건 갖춰"

입력 2017-04-20 09:00   수정 2017-04-20 09:16

[풍납토성 발굴20년] "백제 푸는 열쇠…세계유산 등재요건 갖춰"

독특한 양성 구조에 中·日 교류 흔적…왕성 내 의례 건물 둬 차별화

전문가 "'탁월한 보편적 가치' 충족…기존 백제역사유적지구 확장등재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풍납토성 발굴로 백제 첫 번째 수도인 하남 위례성의 실체가 드러나며 찬란했던 백제 역사가 완성됐다.

풍납토성은 고대 중국·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보여주면서도 이들과는 차별화된 백제만의 색깔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자격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갖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20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도성 입지, 평지 궁성과 배후 산성으로 구성된 도성 체제, 궁성 주변 왕릉군, 외곽 방어성 등 백제만의 특징을 갖췄다"며 풍납토성은 세계유산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풍납토성은 서울 송파구 풍납 1, 2동에 걸쳐 있는 토성으로 현재 2.1㎞가량이 남아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성벽 기저부 너비 43m, 높이 11m 규모 국내 최대급 판축토성으로 밝혀졌다.

1997년 본격 발굴된 이래 대형 신전 건물지를 비롯해 기와 건물지, 왕실 우물, 남-북·동-서 방향으로 교차하는 도로, 도시 구획을 보여주는 유구 등이 발견됐다.

신 교수는 지난달 열린 '서울 백제역사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추진을 위한 전문가 워크숍'에서도 '서울 백제유적의 진정성과 완전성'을 주제로 비슷한 취지로 발표했다.


신 교수는 우선 백제 도성 제도의 고유한 특징인 2개의 궁성을 쓰는 '양궁성 체제'에 주목하며, 하남 위례성인 풍납토성과 남쪽 몽촌토성이 각각 북성과 남성으로 기능했다고 설명했다. 또 풍납토성 내 경당연립 재건축 부지에서 발견된 '呂'자 모양의 대형 건물지와 그 인근에서는 제기류와 말 머리뼈 등이 발견돼 이곳에 국가적 제사와 관련된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발견된 남-북 방향과 동-서 방향 도로는 궁성 내 중요 공간을 분할하거나, 관청과 같은 중요 시설을 연결하는 용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강 변에 인접한 서쪽 성벽을 따라 만들어진 운송로였을 가능성도 있다.

남-북 방향 도로는 현재까지 110m 구간이 확인됐으며, 너비는 7.5∼8m다. 동-서 방향 도로는 남-북 방향보다 잔존 상태는 좋지 않지만, 일부 구간에서 윗면이 평평한 엷은 돌을 깐 것이 특징이다.

풍납토성에서는 성벽을 따라 그 안쪽에서 대형 거주지도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평면 6각형 주거지는 최근 한강유역 전역과 임진강·한탄강 유역에서도 연달아 나와 한성백제 시대 지배층의 주거 형태로 볼 수 있다.

신 교수는 "이 같은 주거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회 계층 분화를 입증하는 동시에 도성 구조가 상당히 체계화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특히 중국제 시유도기, 초두, 낙랑계 토기, 백제의 지방산 물품, 가야계 토기 등이 출토된 점은 백제가 중국·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했고, 풍납토성이 동아시아 외교의 중심지였다는 증거라고 봤다.


풍납토성에서 엿볼 수 있는 백제 문화는 고구려·신라는 물론 중국의 여러 왕조와도 차별화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종섭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서울 백제역사유적과 국내외 유산 비교'에서 "서울 백제역사유적은 같은 시기 다른 유적과 축성의 구조, 왕성의 건축물 구성, 고분의 조성 위치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며 "자기 개성을 갖는 탁월한 문화 양상임을 주장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 밝혔다.

우선 신라의 경주 월성, 고구려의 집안 국내성과 평양성 등은 모두 강 북쪽에 왕성을 뒀다. 그러나 풍납토성을 비롯해 공주 공산성과 부여 부소산성 등 백제의 왕성은 강 이남에 자리했다.

또 중국 한나라의 종묘와 사직은 왕성인 장안성 밖에 자리했지만, 풍납토성은 경당연립 재건축 부지 유물에서 알 수 있듯이 성안에 종교 시설이 집중됐다.

풍납토성 인근 고분의 위치도 다른 지역과 큰 차이를 보인다.

서울 백제역사유적의 고분군은 모두 서남쪽 평지에 조성됐다. 그러나 경주 월성은 북쪽, 국내성과 평양성은 서쪽, 한나라 장안성은 서북쪽, 중국 조위의 업성은 서북쪽에 각각 고분군을 마련했다.

김 교수는 "서울 백제역사유적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다봤다면, 다른 유적은 북쪽으로 올려다보는 입장이었다"며 "한성백제는 사후 관념도 다른 국가와 약간의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분석했다.

노중국 계명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서울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발표를 통해 풍납토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해법도 제시했다. 이미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범위를 넓히는 '확장등재' 방식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조건으로 하는데, 이를 위해 6가지 등재 기준 가운데 하나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공주·부여·익산의 백제역사유적지구는 6가지 기준 가운데 ▲ 인간적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줄 것 ▲ 문화적 전통, 또는 살아있거나 소멸한 문명에 관해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가 될 것 등 2가지에 해당해 등재된 바 있다.

노 교수는 풍납토성 등 서울 백제역사유적지구가 공주·부여·익산과 마찬가지로 이들 요건을 충족시킨다고 봤다. 이에 따라 확장등재 방식을 활용하되, 그보다 앞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일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실무를 맡았던 이들의 자문과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노 교수는 "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동 고분군 등을 사적지로 지정하고 일정한 공간을 완충구역으로 설정해 유적을 보존해 온 것은 높이 사야 한다"며 "1천만 시민이 사는 좁은 공간에서 이 정도의 사적지를 확보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풍납토성 내 주민이 현재 사는 주거 공간 아래에는 백제 당시의 유산이 고스란히 잘 남아 있다"며 "이는 유산과 사람이 공존하는 모습으로, 이 모습을 잘 드러내 주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ts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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