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글리츠·실러 등 르몽드 기고…"유럽과 세계 전례없는 시험대 올라"
르펜 "유로화는 족쇄…당선땐 즉각 EU와 협상 착수" 공언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극우정당 대선후보 마린 르펜(48)의 유럽연합과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탈퇴 공약에 대해 노벨상을 받은 25명의 경제학자가 집단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르펜은 유럽연합과 유로존 탈퇴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마이 웨이'를 재차 공언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5명은 18일(현지시간) 일간 르몽드에 공동성명을 게재해 "우리 중 일부가 대선 후보들, 특히 르펜의 공약을 정당화하는데 인용되고 있다"면서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체제에 대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
경제학자들은 주로 국민전선(FN) 대선후보인 르펜의 반(反) 유럽연합과 보호무역장벽 건설 공약을 겨냥했다.
이들은 "유럽연합의 건설은 평화유지뿐 아니라 회원국의 번영과 세계무대에서의 정치력 증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면서 "반(反)유럽연합 프로그램들은 프랑스의 안정을 해치고, 유럽 정치경제의 안정을 보장해온 국가 간 협력체제를 시험대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상대 국가들을 희생해서 이뤄지는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은 성장을 견인하기에 위험한 방법"이라며 "보복과 무역전쟁으로 인해 결국 프랑스와 다른 나라 모두에 해롭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로존 탈퇴 뒤 프랑화로 복귀하겠다는 르펜의 구상에 대해선 "애초에 유로화를 선택하지 않는 것과 이미 택한 뒤 유로존을 탈퇴하는 것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면서 현상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르펜은 유로화 사용으로 물가상승과 구매력 저하가 초래돼 프랑스 경제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에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기관 IFOP와 르피가로 공동조사에선 프랑스 유권자의 72%가 유로존 탈퇴와 프랑화 복귀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제학자들은 르펜의 이민자 수용 대폭 축소 공약에 대해선 "이민자가 노동시장에 잘 통합되면 해당 국가에 경제적 기회가 된다"며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많은 국가가 이민자를 포용할 줄 알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의 전통적 가치와의 조화 속에 사회복지와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며 "보호주의를 배격한 채 사회정의체계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르펜은 그동안 폐쇄적 이민정책과 각종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프랑스 국적자를 우선으로 적용하고 외국인과 난민을 배제하는 '프랑스인 우선주의'를 내걸고 있다.
석학들은 끝으로 "유럽과 세계가 전례 없는 시험대에 오른 이때 연대가 더더욱 필요하다"면서 "모든 문제를 분열을 책동하는 정치인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르몽드 기고에는 미 프린스턴대 앵거스 디턴과 다니엘 카네만 교수, 시카고대 유진 파마 교수,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 하버드대 아마티아 센 교수, 프랑스 툴루즈 경제대의 장 티롤 교수 등 25명의 저명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참여했다.
르펜은 그러나 EU와 유로존에 적대적인 입장을 재확인하며 당선되면 즉각 EU와의 탈퇴 협상에 착수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이날 일간 르피가로와 인터뷰에서 "남·동유럽의 많은 국가가 강대국 프랑스가 EU를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강제하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당선되면 EU와 별도의 회원국 정상회담을 즉각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르펜은 이어 "유로존 탈퇴는 프랑스인들의 예금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반대로 프랑스인에겐 현 상황이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프랑스인 대부분은 유로를 족쇄로 여긴다"며 "우리의 국가통화를 되찾아오면 수백만의 일자리가 생기고 (통화정책의) 자유도 되찾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U와 유로존 탈퇴 공약에 따른 금융시장의 리스크 확대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수천 개의 가정 대부분이 틀렸다"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서 이미 봤듯이 유권자를 겁주는 묵시록적 예견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EU와 유로존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언해온 그는 부결 시 사퇴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로데오게임은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데 나는 정치를 로데오와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우회적으로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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