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빈공간 메우는 작가적 상상이 이상적 공동체 그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현대극에서는 도저히 다룰 수 없지만, 허구를 섞은 사극에서는 차라리 가능해지는 것.
MBC TV 월화극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과 SBS TV 수목극 '사임당, 빛의 일기'가 나란히 이상향·이상적 공동체를 보여주고 있다. 도깨비('도깨비')나 인어('푸른바다의 전설'), 반인반수('구가의 서')가 등장하지 않지만, 팍팍한 현실과 대비를 이뤄 판타지로 다가온다.
◇'역적'…익화리·동굴 속 산채
폭군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적'에는 이상적 공동체가 두 곳 등장한다.
처음에는 노비 출신 아모개(김상중 분)이 사기꾼·도적 무리와 함께 손을 씻고 일군 익화리 마을이 있었고, 지난 17일 23부부터는 홍길동(윤균상)이 찾아 들어간 동굴 속 산채 마을이 등장했다.
익화리 마을은 어수선한 시대, 지리적으로 국가 통치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상적 공동체였다. 극중에서는 조정의 손길과 눈길이 미치기 어렵거나 귀찮은 지역으로 설명이 됐는데, 그런 사각지대가 아모개의 지휘 아래 이상적인 자치 마을이 됐다.
익화리 주민들은 각자의 과거가 어떠했든 새 사람으로 거듭나 열심히 일했고, 마을은 나날이 번성했다. 익화리 울타리를 벗어난 조선은 어수선했으나, 익화리 안에서는 태평성대가 펼쳐쳤다.
세월이 흘러 익화리가 관군들에 의해 초토화되자, 드라마는 새로운 이상향을 선보였다. 탐관오리를 피해 동굴 속으로 숨어든 백성들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꾸리며 살아가는 산채다.
'아기 장수가 온다'는 무녀의 예언을 믿고 있었던 산채 사람들은 억울하게 옥에 갇혔던 백성들을 구출해온 '아기 장수' 홍길동을 산채의 수장으로 모시게 됐다.
◇'사임당'…양류 공동체
'사임당'에는 사임당(이영애 분)이 갈 곳 없는 유민들을 모아 세운 양류 공동체가 등장한다.
이곳 사람들은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라는 말을 신조로 삼아 근면성실하게 일한다. 그전까지는 산속에 숨어 살면서 거지 떼처럼 생활하던 유민들은 사임당의 지도, 지휘 아래 종이(고려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돈도 벌고 번듯하게 마을도 이루며 살게 됐다.
"그곳에 가면 굶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말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지면서 사방에서 유민들이 양류 공동체를 찾아 한양으로 상경한다.
아무리 일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 어렵고, 탐관오리에 이어 왜적에게까지 괴롭힘을 당하며 살던 백성들에게 양류 공동체는 꿈의 이상향이다.
사임당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자들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이 공동체를 수차례 파괴하려 했다.
그러나 양류 공동체 주민들은 그때마다 합심해서 위기를 극복했다. 땀 흘려 번 돈으로 관아에 세금을 내 공동체의 존립 근거를 떳떳이 했고, 배고픈 이들을 거둬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우며 민심을 모았다.
◇ "나라님도 못한 일을 하네"
'역적'의 아모개, '사임당'의 사임당은 나란히 "나라님도 못한 일을 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다.
나라도 어쩌지 못하는 가난을 구제했고, 피폐해진 삶에 찌들어 살던 백성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역적'의 백성들은 전국 팔도를 돌며 의적으로 활동하는 홍길동에게 "나라님도 구제 못 한 우리를 홍첨지가 구해줬다"며 칭송한다.
'사임당'의 사임당은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는 데 여러가지로 제약이 많은 조선시대임에도,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유민들을 품으며 이상적인 여성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성들은 그런 사임당을 칭송하며 "여인네가 하는 일을 왜 나라님은 못하나"고 혀를 찬다.
'정치의 계절'에 공교롭다.
사임당은 "이 나라에서 지금 가장 고쳤으면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임금의 질문에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였으면 합니다"라고 답했다.
"앞으로의 삶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꿈, 현재는 보잘것없지만 노력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꿈, 여인네라서 서얼이라서, 양반이 아니라서 꿈조차 꿀 수 없는 삶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밤길을 걸어가며 평생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전하 부디 꿈을 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소서."
'사임당'의 이용석 SBS EP는 20일 "우리가 아는 역사 사이에 빈 공간이 많은데 사극이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과정에서 한번쯤 우리가 보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그리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EP는 "사임당이 만약 현대에 있었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 하는 작가의 상상이 이상적 공동체를 만들어낸 것 같다"며 "그 부분이 때마침 오늘의 현실과 맞닿는 의미로 해석되고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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