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네오섬 북부서만 연간 1만마리 밀렵·도살돼
대부분 중국서 한약재·식재료로 쓰이지만 '효능' 근거 없어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총탄도 퉁겨내는 비늘이 관절염 등에 좋다는 미신 때문에 보르네오 섬의 희귀동물인 천산갑이 멸종으로 치달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20일 말레이메일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보르네오 섬 북부 말레이시아령 사바주(州) 일대에서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천산갑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사바주 끄닝가우 지방에 사는 자닌 루와야(36·여)는 "어릴 적 집 뒷마당에 천산갑이 종종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좋은 행동이 아니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몸을 둥글게 마는 습성이나 이리저리 쳐다보는 몸짓이 귀여웠기에 나와 동생들은 종종 천산갑에 장난을 치곤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보르네오 섬에서는 천산갑이 더는 흔한 동물이 아니다.
현지 동물 연구가인 엘리사 판장은 "한때 천산갑은 보르네오 섬 전역에서 쉽게 발견됐지만, 지금은 어쩌다 한 마리를 보는 것도 굉장히 운이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에 적발된 것만 따져도 연간 1만 마리 이상이 불법으로 포획된 뒤 도살돼 해외로 팔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천산갑의 비늘은 류머티스성 발열을 억제하는 부적을 만드는 데 쓰이며, 비늘을 빻은 가루는 한약재로 사용된다.
특히 중국 부유층 사이에선 정력에 좋고 관절염과 천식, 요통 치료 효과가 있다는 소문 때문에 천산갑의 고기가 고급 식재료로 쓰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까닭에 밀렵 되는 천산갑 대부분은 중국에서 소비된다.
사바주는 1997년 천산갑을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밀렵 적발 시 5년 이하의 징역과 5만 링깃(약 1천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하지만 천산갑 밀매로 얻을 수 있는 금전적 이익이 적지 않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바주 야생당국의 밀렵단속 책임자인 모흐드 소피안 아부 바카르는 "천산갑을 찾기 쉬운 정글이나 팜오일 농장에 있는 이른바 '수집상'들은 천산갑 밀매로 상당한 이윤을 남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밀매 조직에 천산갑 고기를 넘기고 1㎏당 120링깃(3만1천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팜오일 농장의 하루 일당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이와 별개로 천산갑의 비늘은 1㎏당 150∼180링깃을 받을 수 있다. 특별한 요리에 쓰이는 천산갑의 태아(胎兒)와 살아있는 새끼를 가져다주면 마리당 2천 링깃(52만원)을 챙길 수 있다.
소피안은 "주민들이 사냥해 온 천산갑 2∼3마리만 넘겨도 1주일 이상 따로 일할 필요가 없는 셈"이라면서 "수집상들이 모은 천산갑은 인적이 없는 해안에서 어선 등에 실려 해외로 반출된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천산갑의 경우 정글 개간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보다 밀렵으로 인한 개체 수 급감이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엘리사 판장은 "온순한 성격 탓에 밀렵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도 개체 수 감소세를 더욱 가파르게 하는 요인"이라면서 "천산갑의 고기와 비늘에 대한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사바주는 멸종위기종에 대한 보전 의식이 희박한 정글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의식 개선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성과가 날 때쯤이면 천산갑은 이미 멸종된 뒤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은 2014년 보고서에서 천산갑의 야생 개체 수가 21년 만에 기존의 20% 이하로 급감했다고 밝혔다. IUCN은 모두 8종의 천산갑을 모두 '취약종'과 '멸종 위기종', '심각한 위기종'으로 지정했다.
판장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야생동물 밀매를 고려할 때 야생 천산갑이 이미 멸종한 수마트라 코뿔소와 마찬가지로 10년 이내에 멸종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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