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발굴20년] 백제 품은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입력 2017-04-21 09:00   수정 2017-04-2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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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발굴20년] 백제 품은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주민 반발 극복 등 과제…"찬란한 백제문화 되찾을 지혜와 관심 필요"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풍납토성 발굴로 한성백제 시대 전모가 드러나며 서울은 2천년 역사를 품은 고도(古都) 정체성을 갖게 됐다.

서울시는 역사문화자원을 제대로 발굴, 보존, 활용하기 위해 5년 시야로 '역사도시 서울 기본 계획'을 세웠다. 풍납토성 등 한성백제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추진하는 것도 포함된다.

한성백제 왕성으로 밝혀진 풍납토성 보존과 발굴에는 주민의 보상 불만을 포함해 장애물이 많이 남아 있다. 역사문화가 현재와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시민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 큰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 조선 수도 한양에서 백제 수도 한성까지

유럽 도시를 둘러본 관광객들은 선조들이 문화유산을 많이 남겨둔 것에 부러움을 느끼곤 하지만 실상 서울도 유서깊은 역사도시다. 1970년대 고속성장하며 기반시설이 건설되다 보니 40여년된 신도시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역사문화자원이 많이 훼손된데다 자원이 있다고 해도 방치돼 일반 시민이 생활에서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울 역사는 조선 정도 600년에서 풍납토성 본격 발굴로 기원전까지 훌쩍 확장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역사를 품고 누리고 만든다는 취지로 역사도시 서울 기본 계획을 세웠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시 "2천년 역사 관련 인지도가 낮은 것을 보면 지금부터라도 서울 역사문화자원을 제대로 발굴, 보존,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에서 만 19세 이상 시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5.9%가 서울 역사를 600년이라고 답했다. 2천년이라는 답은 5.0% 뿐이었다.

서울시는 앞서 풍납토성 등 한성백제 유산을 잘 보존, 활용하기 위해 주민 보상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한다고 2015년 11월 발표했다.

유네스코 등재에 선행돼야 하는 주민 보상을 위해 서울시는 '선택과 집중' 모델을 도입했다. 왕궁 추정지 등 핵심지역을 추려 2020년까지 우선 보상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보상 지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국·시비 2천855억원과 지방채 2천282억원 등 5천137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채 발행 금액은 추후 문화재청에서 지급한다.

◇ 풍납토성 보존·발굴까지 험난한 자갈밭

풍납토성은 20여년간(1993∼2015년) 유구 보존지역 1∼3권역 72만 7천5㎡ 중 35.1%만 보상이 됐다.

문화재 예산 상당 부분이 투입됐는데도 주민 불만은 계속되고 언제 끝날지 기약하기도 어려웠다. 더군다나 신청이 들어오는 곳 위주로 보상이 되다보니 왕궁터 등 핵심구역 본격 발굴로 이어지지 못했다.

대대적으로 주민 보상을 하고 전면 발굴하기에는 너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고, 그렇다고 문화재 보호 필요성을 강조해 주민 협조를 강요하기에는 재산권 피해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 차원에서 풍납토성 갈등과 딜레마를 풀 능력이나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가운데 시간만 흐르고 갈등 골만 깊어졌다.

결국 박원순 시장이 소매를 걷고 나서며 기대가 생겼으나, 보상안이 나온 지 1년여가 지나도록 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보상을 위해 예산을 확보해놨지만 주민 신청이 저조해서 실적이 미미했다.




게다가 풍납토성에 있는 삼표레미콘 공장을 이전하는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법원은 올해 1월 사업인정고시 취소소송 1심에서 삼표산업 손을 들어줬다. 공장을 이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삼표레미콘 공장 자리에 성벽이 존재한다는 개연성이 없거나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또 문화재 원형 보존·관리 목적보다는 매장문화재 발굴 등을 위해 강제수용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사업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 사이에 비교형량이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도 판시했다.

이에 대해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21일 "땅 위에 드러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성벽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라며 "주변에 모두 성벽이 나왔는데 그곳에만 없다는 것이다. 성벽을 뚫어놓고 쌓았다는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그는 "금강변 공산성과 대동강변 평양성 등 삼국시대 성들이 모두 트인 곳 없이 성벽을 쌓았는데 풍납토성만 강쪽을 뚫어놨다는 논리는 학계에서는 넌센스"라며 "당연히 한강 범람을 막으려고 쌓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일제강점기에도 삼표레미콘 부지가 서성벽으로 인정돼서 사적으로 지정됐고 삼표도 사적지 허가권을 받아서 사용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성벽이 없다고 주장한다"라고 지적했다.

삼표 측과 소송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며 6월 초 1차 변론이 예정돼있다.





◇ 역사문화로 풍요로운 도시 서울

한성백제 유적을 잘 보존한다는 데는 다들 이의가 없다. 전설처럼 전해지던 고대국가 백제 초기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교과서를 새로 써야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다. 1천년여 세월이 흐르는 동안 켜켜이 몇 미터 쌓인 흙 아래 고이 남아있는 유물들은 선조들이 남겨준 타임캡슐 선물과 같다.

2000년 풍납토성 내 아파트 건설현장에 주민이 난입해 유물을 훼손한 일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고 문화재 보호에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정부가 추산한 풍납토성 유적 보존 비용은 5조원이었다. 당시 국가 문화예산(2천500억원) 20년치로 엄청난 규모였다.

그 이후로 풍납토성 등 발굴과 보상이 찔끔찔끔 이뤄지고, 풍납토성 유적 보존과 지역 발전을 연결하는 획기적인 청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주민 불만과 고통도 커졌다. 일부에선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잡는다'고 호소했다. '남들처럼' 연립주택을 재건축해서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이 어그러졌다. 다른 지역 집값이 뛰는 걸 보며 문화재에 손발이 꽁꽁 묶인 주민들은 박탈감을 느꼈다.

이제는 국가와 지자체, 정치권의 관심과 지혜, 지역 주민 협조가 절실한 시점이다.

풍납토성 존재와 의미를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다. 동아시아 찬란한 해상왕국 백제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다. 역사유적을 잘 보존하고 지역 주민에게도 도움이 되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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