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정치권 반발 확산…'사용후핵연료 연구' 불투명 전망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대전시 유성구 소재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수년간 규정을 어기고 방사성폐기물을 무단 폐기해 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시민단체는 물론 관할 지방자치단체와 정당까지 원자력연구원을 규탄하고 나섰고, 아예 연구원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노동당 대전시당은 21일 성명을 내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통해 국가 경제의 버팀목이 되겠다던 원자력연은 방사성폐기물을 무단 배출함으로써 방사능 테러를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처럼 장기간 불법과 비리가 지속된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원자력연구원의 구조적인 문제"라며 "'핵마피아'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적폐를 청산하고 즉각 해체하라"고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도 논평에서 "무책임한 연구자 집단에 더는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며 "이번 기회에 원자력연을 해체하고 재편하는 등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 단체는 또 "원전 안전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고, 탈핵을 위한 연구 분야에 국가의 연구 역량을 투자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전시는 원자력연 내 가연성폐기물처분시설과 용융로는 원자력연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데도 시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만큼 해당 시설의 운영을 중단하고 장기적으로는 폐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7일부터 지난 19일까지 원자력연의 방사성폐기물 관리실태를 조사한 결과 총 36건의 원자력안전법 위반사항이 확인됐다.
원자력연은 지난해 9월 제염실험에 쓴 콘크리트 0.2t을 일반 콘크리트폐기물에 섞어 버리는 등 방사성폐기물의 처분 절차를 지키지 않고 버리거나,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물 1t가량을 그대로 빗물관으로 흘려보냈다.
또 방사선관리구역에서 쓴 장갑 55kg을 마음대로 녹여 폐기했으며, 실험 뒤 남은 방사성폐기물 1.3t을 연구원 안에 방치했다.
이밖에 중요한 기록을 조작하거나 누락했으며, 원안위 조사 과정에서 거짓 진술을 하거나 허위 자료를 제출한 사례도 드러났다.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일부 개인의 도덕적 해이나 연구 절차상의 잘못 탓으로 돌릴 수 없다고 본다.
수년 동안 불법행위가 자행돼 온 것은 그동안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특혜 속에 원자력연이 제대로 된 외부의 평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자력연은 앞서 하나로(연구용 원자로) 외벽 부실공사 문제부터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봉 1천699개를 30여년간 반입해 온 사실 등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연달아 신뢰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당장 하반기부터 시작할 예정이던 '사용후핵연료 연구'에 돌입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백원필 원자력연 부원장은 "이번 사태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생각하고 있다"며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실험에 대해서는 '원자력시설 안전성 시민검증단'이 안전성 여부를 점검하고 있는 만큼 안전성이 검증되기 전까지는 실험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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