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경찰의 '낯선섬김'…정용선 前경기청장 자서전

입력 2017-04-23 07:00  

고위 경찰의 '낯선섬김'…정용선 前경기청장 자서전

"사회적 약자가 억울해 눈물짓는 일 없도록"…초판 '매진'

(수원=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공직자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보다 역사와 국민 앞에 더 큰 죄는 없다."

경기지방경찰청 마지막 청장이자,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초대 청장을 지낸 정용선 전 치안정감이 30년 경찰생활을 기록한 자서전을 펴냈다.




'정용선의 낯선섬김'이란 제목의 335쪽 분량의 책에는 그가 태어나 자라면서 경찰관이 된 사연부터, 경찰 고위간부로 이뤄낸 업적과 경찰조직을 향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판 인쇄본이 매진돼 지금은 구하기조차 힘들게 된 이 책은 현재 2판 인쇄가 한창이다.

경찰에 몸담고 있거나 저자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구매했을 법한 이 책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얼까.

책을 읽어본 경찰관들은 기존 퇴직자들의 책에선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리더십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경찰관은 "퇴직자들이 쓴 책을 몇 번 읽어봤는데, 주로 경찰조직에 대한 쓴소리가 많았다"라며 "물론 그런 책들도 저자가 경찰조직이 쇄신하고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읽을 땐 시원할지 몰라도 조직에 대한 애정보단 불만이 느껴져 마음이 불편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이번 자서전은 '이런 선배도 있었구나'라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세계에서 최고로 일 잘하는 경찰관은 아니라 할지라도 가장 성실하고 바르게 일하는 모범경찰관이 되겠다는 다짐 때문에 밤낮·휴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근무했다."

"선배나 상사들로부터 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일했던 경찰관도 있었구나!'라는 느낌만 드린다 하더라도 작은 보람이 될 것이다."(책머리 中)




1964년 충남에서 태어난 정 전 청장은 우수한 성적으로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학비가 들지 않는 경찰대학교에 입학했다.

3기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경찰에 몸담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치안정책을 고안하며 경찰의 위상을 한 단계 더 올려놨다.

스스로 권위주의를 벗고 말단 경찰관에까지 친근하게 다가가 따뜻한 리더십을 보인 그는 경찰 안팎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고위간부였다.

책에서 그는 한때 승진에 누락해 조직에 불만을 품던 자신에게 딸이 한 말을 가슴 깊이 새긴 일화를 소개했다.

3년째 청와대 치안비서실 파견 근무 중이던 2001년 총경 승진 심사에서 연거푸 탈락해 집에서 혼잣말하며 투덜거리고 있을 때 초등학교 2학년이던 딸이 "아빠 공무원이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하셔야지 승진하려고 일을 하시면 돼요?"라고 했다는 것.

공직자로서 '승진'을 가장 큰 목표로 하지 말 것을 현직에 있는 후배들에게 주문하는 것 같으면서도, 따끔한 비판보단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딸 때문에 철이 들어가는 아빠'라는 챕터를 통해 따스하게 전하고 있다.

"사람이 지위가 높아질수록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돌봐야 하는 거야."라는 노모의 말씀을 흘려듣지 않고, 신임 순경이 발령받아 오면 몇백 명이더라도 집무실 책상을 내어주고 일일이 기념사진을 함께 찍은 정 전 청장은 장애인, 여성,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색 시책을 추진하면서 경기도 치안환경 개선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그가 기관장으로 있던 충남경찰청, 대전청, 경기남부청 등 4곳은 한국장애인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심불패, 세심필승'이란 모토로, 경찰 업무의 불합리를 바로잡고, 선진 경찰로 나아가기 위해 경기청장 재임 시절 646가지 관행을 찾아내 이중 555가지를 개선했고, 나머지는 개선 중이거나개선 검토 대상에 올랐다.

정 전 청장은 책에서 "새로운 일을 싫어하는 경찰관들의 불평불만도 있었고,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음해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지위가 낮고 권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서럽고 불편하고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겪거나 그로 인해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선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부하직원들의 실수에도 화 한번 내지 않아 'GOD 용선'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정 전 청장은 퇴임 후 현직 후배들에게서 받은 응원 메시지도 책 말미에 담았다.

현직 경찰관들은 그를 닮고 싶은 선배로 기억하고, 그의 올곧은 경찰 마인드를 공감하고 있었다.

"어느덧 26년째 경찰생활을 했지만 거품을 쏙 뺀 리더십이 조직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 "몇몇 청장님을 모셨지만, 이렇게 친근감이 느껴지고 진짜 본받고 싶은 선배 같은 분은 처음.", "비록 선배님처럼 무언가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 수 있지만 그 의미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려고 오늘도 노력하겠다."(퇴임 후 받은 문자 中)

정 전 청장은 퇴직 후 현재 충남 소재 세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goal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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