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조작국 피하고 청탁금지법 혼란 줄어 기존 불확실성 요인 해소
수출 회복 등 경기 온기 돌지만…안보·정치분야 새 리스크 부상
"불확실성 내용만 달라졌을 뿐…대외 공조 체계 강화해야"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지난해부터 한국 경제를 무겁게 짓눌렀던 불확실성이 당초 우려와 달리 큰 문제 없이 해소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최근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했고 소비를 크게 제약할 것으로 우려됐던 청탁금지법 역시 순조롭게 정착되는 모양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혼란스러웠던 정치판도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이후 빠르게 대선국면으로 전환되면서 안정을 찾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에 따른 통상 압박 위험은 여전히 잠재돼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둘러싼 대내외 갈등도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최근에는 북한 핵 개발을 포함한 안보 리스크까지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긴장감을 아직 놓으면 안 된다면서 대외 공조체계를 강화해 불확실성이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환율조작국 지정 피했다…사그라지는 불확실성
지난해 말 이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조선·해운 구조조정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짙은 안개와 같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청탁금지법 시행 등 악재가 겹쳤고 대우조선해양[042660]의 회사채 상환 문제와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 등이 몰린 4월에 큰 위기가 온다는 '4월 위기설'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4일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고 관찰대상국 지위를 유지했다.
여기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무역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100일 계획' 마련에 합의한 영향이 컸다.
정부가 마련한 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안도 국민연금 등의 찬성으로 잇따라 통과되면서 유동성 위기에서 일단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강화될 것으로 우려됐던 강경 보호무역주의 기조도 아직은 수사만 난무할 뿐 구체적인 실행으로 본격화하지는 않고 있다.
청탁금지법이 자리 잡아가면서 소비에 대한 악영향도 예상보다 작은 모습이다.
청탁금지법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던 대표적인 산업인 골프가 그렇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지난해 국내 265개 골프장 경영 실적을 분석한 결과 영업이익률은 12.1%로 전년보다 0.8%포인트 늘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서 순조롭게 차기 대통령 선거 과정이 진행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 역시 줄어들고 있다.
불확실성이 걷힌 자리는 수출이 살아나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희망으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수출은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1년 전보다 28.4% 증가했다. 이 기세라면 6개월 연속 증가 행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이후 3개월 연속 감소한 소매판매가 넉 달 만에 반등에 성공하는 등 소비도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7로 두 달 연속 상승하면서 지난해 10월(102.0)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최근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의 잇따른 성장률 전망치 상향 조정은 이런 경기 훈풍을 실감케 한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올린 2.6%로 상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18일 한 달 사이 0.1%포인트 올린 2.7%로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바꿨다.
◇ 안개 뒤 태풍?…꽃길 낙관은 아직 일러
그러나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4월 환율보고서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미국의 통상 압박 수위는 앞으로도 더 높아질 수 있다.
미국 상무부는 오는 6월 말 무역적자 보고서를 발표한다.
보고서에서 미국은 대미 무역흑자가 많이 나는 국가들의 원인을 분석하고자 무역 관행, 법률, 규제, 시장 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상대국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 규모로 8위에 오른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환율조작국 지정은 피했지만 미국은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시장 개방, 규제 완화 등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한다"며 통상 압박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통상 압박으로 비칠 수 있는 미국의 일부 움직임 역시 한국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16일 한국을 찾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선(reform)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단어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트럼프 미국 행정부 최고위 인사가 한·미 FTA 문제를 공식 석상에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일에는 미국 정부가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 탄소·합금강 선재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착수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산 수입품을 대상으로 반덤핑 조사를 시작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어서 업계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 움직임도 언제든지 재개될 수 있다.
이달 초 미·중 정상회담 후 양국이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100일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계획 세부 내용에서 양국이 합의를 보지 못하거나 계획대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미·중 통상 전쟁은 다시 불거질 공산도 크다.
미·중 외에 다른 국가들까지 경쟁적으로 비관세 장벽을 높이는 데 참여하면 그나마 살아나던 세계 교역 증가세가 꺾일 수 있다.
여기에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 협상, 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국 선거 결과에 따라 세계 경제를 둘러싼 안개는 더욱 짙어질 수도 있다.
지정학적으로는 사드 배치와 북한 핵 개발 등 안보 관련 리스크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국내에 부채 상환 능력이 낮은 한계가구,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가운데 불확실성이 악재로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은 증폭될 우려가 있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걷히고 나면 폭풍이 몰려올 수 있다는 비관론이 여전히 잠재돼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 "불확실성 끝나지 않았다…대외 공조체제 강화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이전과 비교해 내용과 구성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 보호무역주의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안보·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고 프랑스 대선 등 유로존발(發) 불확실성이 새롭게 부각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트럼프노믹스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라며 "정부가 에너지 분야 등에서 자율적으로 대미 흑자를 축소해보려고 하는데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팀장은 "프랑스 대선 과정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주장이 나오는 등 유로존이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당장 유럽발 정치적 리스크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도 "최근 불확실성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대내 정치, 대외경제 이슈에서 안보·대외정치 이슈로 옮겨가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대외 공조체제를 강화하면서 불확실성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대미무역 흑자 축소에 대응해 미국과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는 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윤창현 교수는 "자율적으로 대미 흑자를 축소하면 달러를 쌓을 수 없으니 외환보유고 증가 속도도 둔화할 수 있다"라며 "결국 대외부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들게 되는 만큼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 추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광석 교수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 대외국과의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정부가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역할도 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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