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협상카드·요구사항은 '베일'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대선후보들의 통상정책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물결 속에서 경제의 동력인 수출을 어떻게 지켜갈지를 보여주는 가늠자가 된다.
주요 후보들은 대체로 자유무역의 틀 안에서 국익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통상외교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엇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된 해(2012년) 시행된 지난 대선에서 이 문제를 두고 후보들 간 치열한 찬반 공방이 벌어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하지만 후보들이 내놓은 10대 공약을 보면 커다란 방향성만 제시했을 뿐 한미동맹, 북핵 등 다른 외교 이슈에 밀려서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은 제시하지 못했다.
현재 통상 부문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이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FTA 재협상이 통상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2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한미관계와 관련해 '군사동맹과 FTA를 바탕으로 전략적 유대를 지속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한미 FTA를 꼭 집어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선진적 외교 역량을 재정립하고 국내 경제와 선순환하는 FTA와 통상정책에 기반을 둔 선진 통상외교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주요 후보 중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가장 자세하게 밝혔다.
심 후보는 '한미 FTA 등 그동안 체결했던 FTA가 국민경제, 인권 등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한미 FTA를 비롯한 통상정책을 10대 공약에 포함하지 않았다.
일단 공약은 원론적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공약보다는 각종 인터뷰를 통해 통상문제에 대한 후보들의 생각을 더 많이 엿볼 수 있다.
'양강'인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발언을 보면 입장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문 후보는 지난달 26일 '문재인의 대구·경북 비전' 기자회견에서 "우리도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자세, 깐깐하게 협상할 뿐 아니라 우리 이익을 위해 재협상을 요구하고 양국 간 이익 균형을 맞추는 당당한 외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지난 21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한미 FTA로 지난 몇 년간 양국 모두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걸 미국에 잘 설명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바꾸고 싶은 부분도 관철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두 후보 모두 한미 FTA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문 후보든 안 후보든 한미 FTA 재협상에 들어갈 경우 미국 측 주장에 대응할 카드는 무엇인지, 반대급부로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요구사항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른 이슈인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중요한 통상 현안이다.
후보들은 사드 보복에 대해 일제히 비판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 후보는 지난달 3일 "중국 정부의 도를 넘는 보복 조치에 유감"이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같은 날 안 후보는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정책간담회에서 사드 보복과 관련해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드 보복은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중국 간 정치·군사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발생한 일인 만큼 고도의 외교통상전략이 필요하다.
두 후보는 이와 관련해서도 아직 뚜렷한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e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