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하기 앞서 북한 측 의견을 물어봤는지를 놓고 논란이 거세지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이 진화에 나섰다. 문 후보 대변인인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유엔 표결 닷새 전인) 11월 16일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기권' 방침을 결정한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문 후보가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을 결정했다는 송민순 전 장관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그해 11월 16일 노 대통령 주재 관저회의 자료 발췌본,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 외교안보 간담회 배석자 기록, 같은 회의에서 논의된 대북 통지문 요지 등 3건을 증빙 자료로 공개했다. 처음의 회의 자료 발췌본은 당시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으로 배석했던 김 의원 본인의 메모이고, 서별관 회의 배석자 기록은 박선원 당시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이 작성한 것이며, 대북 통지문 초안은 윤병세 당시 통일외교안보 수석비서관(현 외교부 장관)이 작성한 것이라고 한다. 서별관 간담회 다음 날 북측에 전달된 통지문에는, 북한인권결의문 내용을 완화하기 위해 외교부가 노력한 사실, 결의문 채택 후에도 남북 합의를 실천하겠다는 우리 측 의지 등이 담겼다고 김 의원은 설명했다.
그러나 손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문 후보 측 해명이 사실과 다르다며 기존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송 전 장관은 언론과 통화에서 "11월 16일 회의에서 기권 쪽으로 정리된 것에 대해 주무장관인 내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친서까지 보내 반대했다"면서 정부 입장을 정하는 논의는 표결(한국시간 11월 21일 새벽) 직전인 11월 20일까지 계속됐다고 밝혔다. 그는 "11월 20일 우리 유엔 대표부 보고서 내용대로 '찬성'하자고 했더니 문 실장(문 후보)이 '남북 채널의 반응이 중요하니 함께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면서 "그런 의논이 있고 약 1시간 후 북한의 메시지가 싱가포르로 전달돼 최종 기권 결정이 내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회고록에서, 2007년 11월 20일 싱가포르 '아세안+3' 회의에 참석 중이던 노 전 대통령이, 백종천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의 북한 입장 보고서를 참고해 표결 기권을 최종 결정했다고 기술했다. 송 장관이 이번에 공개한 청와대 문건은, 당시 백 실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인데, 우리 정부의 인권결의안 찬성을 강하게 반대하는 북한 입장이 담겨 있다.
문 후보 측이 현행법 위반의 부담을 감수하면서 당시 청와대 회의 기록을 공개한 것은 의혹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송 전 장관이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반박하고 나서 의혹이 말끔히 해소될지 의문이다. 그동안 문 후보가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한 내용이 사실 일관적이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전날 기자들에게, 작년 10월 이후 문 후보가 페이스북, JTBC '썰전', 대선후보 TV토론 등을 통해 밝힌 내용이 모두 다르다고 지적했다. 송 전 장관이 공개한 문건에 '남측이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은 북남선언에 위배되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문 후보 측 주장대로 '기권 방침'을 일찌감치 정해 통보한 것이라면 이런 반응이 나오기 어렵지 않나 싶다.
상반된 주장을 펴며 입씨름만 하다가는 언제 진실이 밝히질 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이렇게 중대한 사안을 유야무야 덮은 채 선거를 치르기도 어렵다. 어느 쪽 주장이 맞든 국민 앞에 한 치의 의문이 없도록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엔 유엔 표결에 앞서 북한의 의사를 타진하는 것이 과연 온당했느냐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본질이 달라졌다. 선거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지금 봐서는 차기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의 정직성과 신뢰성 문제로 초점이 옮겨간 것이다. 바른정당 유 후보는 "아직 선거가 17일 남았다. 국정원, 청와대, 통일부 등 모든 기관이 자료를 공개하고, 비공개 자료라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검증하자"고 제안했다. 관련 기관들은 현행법 때문에 어려울지 모르나 국회 정보위의 비공개 검증은 가능하다고 본다. 대선 후보를 낸 5당 중 민주당과 정의당을 뺀 나머지 3당은 이에 찬성한다고 한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답도 없는 설전으로 국민의 귓전을 어지럽히지 말고 신속히 의혹을 규명하는 것이 지지율 1위인 문 후보한테도 당당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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