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갈등 경제적 비용 연간 최대 246조원…갈등관리 기본법 제정 '절실'
전문가들 "정치적 계산·힘보다 사회적 합의로 해결해야"
(수원=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2009∼2013년 우리나라의 평균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7위로 높은 편에 속했다.(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 자료)
또 사회적 갈등으로 발생하는 비용도 연간 최대 246조원으로 추산하는 조사까지 나와 있다.(삼성경제연구소 조사)
대한민국 사회갈등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군 공항 이전, KTX 역사 신설 유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자체 또는 지자체끼리 갈등이 다양화되고 증가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커져 전반적인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 과제의 하나로 '사회적 갈등이 더는 치유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지기 전에 지자체, 사회단체, 국민과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눈덩이처럼 커진 갈등 비용…정부 조정기능은 미흡
역사·지리적으로 이웃사촌인 경기 수원시와 화성시는 최근 몇 년 전부터 원수가 됐다. 화성시 역점사업인 광역화장장사업을 수원시가 서수원주민 편을 들어 반대입장을 국토부에 밝히면서 3년 넘게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다.
이번에는 수원시 수원 군 공항 이전사업이 화성시 반대로 역풍을 맞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수원 군 공항을 이전시키려는 수원시는 '국방부가 예비이전 후보지로 선정한 화성 화옹지구를 위해 5천111억원을 지원하겠다'며 '화성시 달래기'에 나섰지만, 화성시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신청을 하기로 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수원 군 공항 이전을 위한 행정절차가 언제 마무리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화장장이나 군 공항 이전 갈등이 곪아가도록 광역지자체인 경기도와 중앙정부의 중재 기능은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지난해 영남권을 뜨겁게 달궜던 신공항 건설문제는 지역 간 갈등 소지를 여전히 안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6월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시가 아닌 김해국제공항 확장으로 결론을 냈지만, 부산과 경남지역 민심은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 건설될 대구통합공항이 김해 신공항보다 규모가 더 큰 것으로 알려져 민심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KTX 세종역 신설 여부를 놓고 세종시와 충북이 갈등을 빚고 있다. 세종시가 KTX 세종역 신설을 공론화되자 세종시 관문 역할을 해온 오송역 쇠퇴를 우려한 충북도와 도민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정치 쟁점화됐다. 대선후보들까지 나서 KTX 세종역 신설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갈등은 잠시 누그러졌지만,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다.
공공의 갈등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지자체·주민 간 심각한 불신과 불통을 야기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연간 최소 82조원에서 최대 246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사회적 갈등지수를 선진국인 G7 수준으로 낮추면실질 국내총생산을 0.3% 포인트 상승시킬 수 있다고 전망한다.
차기 정부가 갈등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문제를 주요 어젠다로 올려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커지는 사회적 갈등과 비용에도 정부의 조정기능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데도 정부 갈등조정 기능은 줄어드는 추세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의원은 2015년 9월 "국무조정실이 그해 발생한 30건의 갈등현안 중 26건에 대해 한차례도 현장방문을 하지 않았다"면서 "국무조정실이 매년 사회갈등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갈등관리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국무조정실이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무조정실 갈등관리사업 예산은 2009년 3억6천600만원에서 2016년 2억8천100만원으로 줄었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중앙정부의 갈등관리 콘트롤타워 역할은 미미하다"면서 "국무조정실이 있긴 하지만 인력과 예산이 한정돼 있다. 이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결여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갈등관리기본법 제정· 갈등 해소기구 마련이 해법
전문가들은 갈등관리를 위한 기본법 제정과 독립적인 갈등 해소기구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치적 계산과 힘으로만 갈등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해결학 박사 국내 1호인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은 "사회갈등은 비용소모도 엄청나지만, 사회 각 부문이 쪼개지고 불필요하게 적대시하면서 감정적인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더 큰 폐해"라면서 "갈등 가능성이 있는 사업의 당사자들끼리 충분히 만나 의견을 수렴하면서 합의할 수 있는 참여형 정책 결정방식과 같은 법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는 대안적 분쟁해결제도인 행정분쟁해결법(ADRA)과 협상에 의한 규칙제정법(NRA)이 1996년 제정됐고, 일본에서도 ADR 기본법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참여정부 때 '공공기관의 갈등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했는데, 적용 대상이 중앙행정기관에 한정돼 있고 권고수준밖에 안 돼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갈등해결을 위한 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는 "지자체 갈등 발생 시 스스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책무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대통령령이 아닌 기본법으로 갈등해결관련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갈등해결을 위한 공론화 기구 도입, 독립적인 사회통합 재단 설립, 지방자치단체 간 상시 협의체 구성 등 여러 가지 대안도 제시했다.
전형준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는 예방적 갈등해결 프로세스의 하나로 지방자치단체 간 상시 협의체 구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은 층간소음 갈등과 비슷하다. 평소 이웃 간 소통과 교류가 있었다면 소음을 받아들이는 의식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지자체도 평소에 이웃 지자체와 소통할 수 있는 상시 협의체를 만들어 활용하면 실제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해결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경되거나 축소되는 국민통합을 위한 기구를 대통령 직속이 아닌 국회산하기구나 민간재단 형태로 운영하면 제삼자로서 공공성을 인정받게 돼 공공갈등 해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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