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 상황 오히려 퇴보…차별·폭력 악순환 반복
한인사회도 이제 달라져야…"정치적 역량·목소리 키워야"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종우 특파원 =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흑인 폭동' 발발 25주년을 맞이해 LA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미국 언론들의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발생한 LA 폭동 사태의 직접적 도화선은 백인 경찰 4명의 '로드니 킹 구타 사건'이다. 경찰관 4명이 무죄 선고를 받자 격분한 흑인들의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이다.
폭동이 남긴 피해는 참혹했다. 무고한 시민 53명이 사망하고 수천여 명이 부상했다. 재산피해액만 최소 10억 달러(약 1조1천295억 원)에 달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흑(韓黑) 공동체 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로드니 킹 구타 사건보다 '두순자 사건'을 집중 내보내면서 폭동을 한-흑 갈등으로 몰아갔다.
두순자 사건은 로드니 킹 구타 사건이 발발하기 한해전인 1991년 비슷한 시점에 흑인 밀집지역인 캠튼의 한인마켓을 운영하던 두 씨가 매장에서 물건을 수차례 훔친 흑인 소녀과 다투다 살해한 사건이다.
LA 폭동 이후 25년이 지났지만, 인종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4년 미주리 주 퍼거슨과 2015년 볼티모어에서 발생한 흑인 소요사태 등에서 보듯 인종 간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페르난도 구에라 로욜라 메리몬트 대 정치학 교수는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LA의 과거와 현재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정치적으로는 히스패닉(중남미 출신)계 정치인이 큰 폭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백인 주류가 LA 정치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한국계 정치인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다.
경제적으로는 25년 전보다 사정이 더 나빠졌다. 경제 침체로 중산층이 위축되면서 빈부 격차는 현격히 커졌다. 흑인 밀집지역인 LA 남부에서 지역개발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실업률도 줄지 않고 있다.
LA 지역에 노숙자가 최근 급증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재 LA 카운티의 노숙자 수는 4만7천여 명, LA 시에는 2만6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상황 변화는 없지만, 과거처럼 대규모 폭동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당히 줄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는 LA에 거주하는 청년층들 사이에서 인종 장벽보다는 지역사회에 소속감을 느끼는 '앤젤리노 정체성'이 두터워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전국적인 이슈가 되고 있지만 흑인 소요 사태가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서 자주 노출되면서 오히려 이에 둔감해지는 역설적 상황도 한몫하고 있다.
정치분석가인 얼 오파리 허친슨은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LA는 25년 전이나 25년 후나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장태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 리버사이드)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LA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한인들"이라며 "많은 한인이 생계의 터전을 잃었고 일부는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는 "LA 폭동과 같은 불행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한인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면서 "한인 2·3세들이 적극적으로 정치 과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jo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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