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증세 없는 복지', 위험한 실험 또 하나

입력 2017-04-26 17:36  

[연합시론] '증세 없는 복지', 위험한 실험 또 하나

(서울=연합뉴스) 대선 후보 TV토론이 진행되면서 증세 없이 이행하겠다는 '선심성 공약' 문제가 다시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24일 대선 후보들의 주요 공약과 소요 재원을 해당 후보 측에 물어 공개했다. 이 내용을 보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190여 개 공약을 실천하려면 35조6천억 원(이하 연간)이 필요하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153개 공약 이행에는 40조9천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또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41조6천600억 원,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110조 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공약 이행에, 가장 적은 18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각 후보 캠프의 계산이 얼마만큼 정확한지도 알 수 없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큰돈이 들어가는 공약은 복지, 일자리, 교육 등 분야에 몰려 있다. 문 후보는 노인(소득 하위 70%) 기초연금 인상(월 20만 원→30만 원), 0∼5세 아동수당 신설(월 10만 원), 청년 구직 촉진수당 도입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또 대통령 직속위원회를 만들고 21조 원을 투입해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후보도 노인(소득 하위 50%) 기초연금 인상, 청년·아동수당 신설, 육아휴직 급여 한도 상향 조정 등을 약속해, 복지 공약에서 문 후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안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인 '5-5-2 학제개편' 공약을 이행하려면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홍 후보와 심 후보도 노인 기초연금을 문.안 두 후보와 동일한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홍 후보와 유 후보는 똑같이 가정양육수당 신설과 육아휴직 급여 한도 인상을 내걸었다. 심 후보는 아동수당(월 10만 원) 전면 지급, 215만 가구 주거수당(월 20만 원) 지급 등 파격적인 공약을 내놨다.



'중부담-중복지'를 내세고 있는 유 후보와 진보성향의 심 후보는, 공약 이행을 위해 필요하면 증세를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유 후보는 복지 프로그램을 공약하면서 증세를 안 하겠다는 것은 거짓말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해왔다. 문 후보와 안 후보의 경우 각각 연간 35조, 40조가량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면서도 증세가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다. 문 후보는 최근 4차 TV토론에서도 "초과 세수분을 활용하고 재정지출을 효율화해 재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먼저 하고 필요하면 증세를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안 후보도 "(세금을) 올려야 하는데 순서가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증세란 세금감면 항목을 줄여 실효세율을 높이거나 기존의 명목 세율을 높여 세금을 더 걷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유권자들한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연간 수십조 원의 복지 예산을 증세 없이 마련하기는 어렵다는 게 재정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매년 유동적인 세수 자연증가분이나 세출 절감분 등으로 이런 대형 공약을 이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증세 등 재원 대책이 누락된 공약은 제대로 이행되기 어렵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 정부의 복지 공약 이행 과정에서도 분명히 확인됐다. '헛공약'은 국민과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라면 껄끄럽더라도 증세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법인세든 소득세든 구체적인 세목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진 강화 등 증세에 대한 기본 입장과 방향은 밝히는 것이 당당한 태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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