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구체적 결과 발생해야…처벌규정, 죄형법정주의 위반"…검찰 항소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고속도로 차량 단속 등에 쓰이는 무인비행선에 위험성이 있는 폭발성 가스를 주입해 운행한 것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관련 법령 등에 비행선 운항을 위해 비폭발성 가스를 쓰도록 할 뿐 폭발성 가스를 사용한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이 초래되면 처벌할지를 규정하지 않아 죄형법정주의와 형벌 법규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인명 피해, 시설 손괴 등 구체적인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동부지법 형사2단독 이형주 부장판사는 옛 항공법(현 항공안전법) 위반 및 사기 혐의로 기소된 무인비행선 운영업자 김모(58)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3월 24일 경남의 A 휴게소와 경북의 B 휴게소 사이 고속도로 구간에서 무인비행선을 운항하며 폭발성 가스인 수소가스를 주입해 운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초경량 비행장치인 무인비행선은 부양가스로 비폭발성 가스인 헬륨가스 등을 주입해 운행해야 하는데 폭발성 가스를 사용해 '항공상의 위험'을 발생시켰다는 이유에서다.
또 2014년 한국도로공사와 계약을 맺고 헬륨가스 비용을 청구해왔는데 실제로 구매해 사용하지 않은 가스비 2천200여만원을 받은 혐의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 부장판사는 우선 항공법 처벌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불명확해 김씨의 행위를 해당 규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씨에게는 옛 항공법 제160조(과실에 따른 항공상 위험 발생 등의 죄)가 적용됐다. 이 조항은 과실로 항공기·초경량비행장치·비행장·공항시설 또는 항행안전시설을 파손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항공상의 위험을 발생시키는 경우 처벌하도록 한다.
재판부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법률이 처벌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며 다소 광범위한 개념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해 알 수 있어야 한다"며 "이 사건에 적용된 처벌규정은 이러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 밖의 방법으로 항공상의 위험을 발생'시킨 행위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 내용이 없이 사실상 행위 양태에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라며 "개별 처벌규정은 발생한 (법익) 침해 결과나 보호법익에 초래된 위험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파손', '추락' 등 구체적인 법익 침해 결과를 범죄 요건으로 정한 다른 조항을 들어 "김씨에게 적용된 '항공상의 위험을 발생'시킨 행위는 '위험'이라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물건이나 시설의 손괴, 인명의 사상 등 구체적인 침해 결과가 발생한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며 김씨의 공소사실은 아무런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률상 미비를 지적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지 않은 데 대해선 "직권으로라도 위헌심판을 제청해야 하겠지만 법원의 위헌심판 제청은 위헌법률 심사가 주된 목적이 아니라 당해 사건에 적용된 법률이 위헌의 의심이 드는 경우 피고인이 그에 의해 유죄로 인정되지 않도록 하는 데 1차적 목적이 있다"며 "법률 해석으로도 무죄를 인정하므로 (별도로) 위헌심사를 제청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헬륨가스 비용을 속인 사기 혐의도 "피해자에게 아무런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 사기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헬륨가스를 사지 않고 이미 사용한 가스를 다시 포집해 재활용했다고 진술했는데 비행선에 실제로 헬륨가스가 사용됐으므로 그 가스를 어떻게 마련했는지와 관계없이 시세에 상응하는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한편 검찰은 1심 판결에 수긍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25일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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