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내년부터 적자…베이비붐 세대 수급자 진입에 연금도 휘청
보험료율 인상 위한 사회적 공감대 '난제'…사회적 합의 기구 필요
(세종=연합뉴스) 서한기 민경락 기자 = "둘 다 덩치가 크고, 회색이며, 사람들한테 아주 인기가 많다. 몸이 육중해 움직이기 힘들다는 점도 빼닮았다."
연금전문가인 독일 브레멘대학교 칼 힌리히스 교수의 말이다.
그는 연금을 코끼리에 비유했다. 연금개혁을 둘러싼 세계의 진통을 도무지 꼼짝 않으려는 코끼리 옮기기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연금 등 사회보험의 개혁이 절실한 것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고령화 속도는 사회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는 첫 번째 요인으로 꼽힌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약 8년 뒤인 2025년에는 4대 보험에서만 매년 22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정부의 전망은 개혁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 집권 초기에 사회보험 개혁을 밀어붙이지 못하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보험료율 인상을 포함한 재정 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https://img.yonhapnews.co.kr/photo/cms/2017/03/29/01//C0A8CA3C0000015B1A2B8D0A000FE6BD_P2.jpeg)
◇ 바닥 드러낸 4대보험…연금 흑자 증가율 둔화
![](http://img.yonhapnews.co.kr/photo/ap/2017/04/19//PAP20170419047401034_P2.jpg)
국가 중장기 재정 전망을 보면 공적연금 등 사회보험의 개혁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초저출산으로 보험료를 낼 청·중년층은 급격히 줄어들고, 연금과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노인은 급증하면서 공적연금의 지속 가능성에는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16∼2025년 8대 사회보험 중기 재정 추계를 보면 지난해 5조2천억원 흑자를 기록한 건강·장기요양·고용·산재 등 4대 보험 수지는 2025년 21조6천억원 적자로 반전될 것으로 전망됐다.
당장 건강보험은 내년부터 적자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빠른 고령화로 노인 의료비가 큰 폭으로 증가한 탓이다.
총 급여비 중 65세 이상 인구의 급여비 비중은 지난해 38.6%에서 2025년 49.3%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됐다.
장기요양보험은 건강보험보다 사정이 더 좋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400억원 적자를 낸 장기요양보험이 2020년에는 적립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국민연금은 흑자규모가 지난해 45조9천억원에서 2025년 57조2천억원으로 확대되겠지만 흑자 증가율은 같은 기간 7.8%에서 5.9%로 점차 둔화할 것으로 예측됐다.
1955∼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711만명이 순차적으로 연금 수급자가 되면서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연금은 2044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고 2060년에 이르러서는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추정됐다.
이보다 기금 소진 시기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이 바닥나는 시점을 정부 예상보다 2년 더 빠른 2058년으로 예측했고 납세자연맹은 무려 9년이나 빠른 2051년으로 전망했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은 이미 적자 상태다. 현재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기금은 국민 세금으로 부족분을 보전하고 있다.
공무원·군인연금은 2016년 3조8천억원에서 2025년 9조7천억원으로 적자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됐다.
사학연금은 2015년에 보험료율을 7%에서 9%로 높인 덕분에 그나마 고갈 시점이 2033년에서 2042년으로 약간 늦춰졌다.
![](http://img.yonhapnews.co.kr/photo/cms/2016/04/22/01//C0A8CA3C000001543B513DC3000D6C72_P2.jpeg)
◇ 덩치 큰 코끼리를 옮길 수 있을까…개혁 가시밭길 예고
사회보험·연금의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지만, 개혁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범사회적인 공감대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리면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추거나 보장 수준을 높일 수 있지만 기금 운용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높지 않고 저항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일찌감치 연금제도를 도입한 유럽 선진국에서도 연금개혁은 종종 총파업과 정권퇴진까지 불러오는 등 난제 중의 난제로 여겨진다.
정부는 2015년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려고 했지만, 공무원 노조 등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애초 목표로 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반쪽 개혁에 머물렀다.
공무원연금과 함께 3대 특수직역연금으로 꼽히는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은 아예 시작조차 못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나라 공적연금이 자녀를 많이 낳고 수명이 길지 않은 고도 성장기 시대에 만들어져서 인구구조와 경제여건의 급격한 변화에 속도감 있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은 분명 시급한 과제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다.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공적연금의 소진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국민이 '적정 부담'을 지고 '적정 급여'를 받는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올리려고 몇 차례 시도했다.
그렇지만 정치권이 머뭇거리면서 연금지급률만 70%에서 60%, 다시 40%로 낮아졌을 뿐이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소득의 9%다. 제도도입 첫해인 1988년 3%에서 시작했지만 5년에 3%포인트씩 두 차례 올려 1998년 9%가 됐고 이후에는 변동이 없다.
건강보험의 경우 정부가 올해 초 저소득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2024년까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등 소득 위주로 부과체계를 개편하는 안을 내놓으면서 재정 압박은 한층 더 심해졌다.
정부가 발표한 안의 핵심 내용은 소득이 일정기준 이하인 지역가입자에게는 정액의 최저보험료가 부과하고 재산·자동차를 기준으로 부과되는 보험료는 서서히 줄이는 것이다.
다만 개편안이 시행되면 6년간 현재보다 연간 9천억 원의 보험료 손실이 생기고 그 이후부터는 2조3천억원씩 손실이 늘게 된다.
정부는 소득파악률을 높여 보험료를 더 걷고 장기적으로는 부정수급 방지, 급여비 관리를 통해 재정 효율을 높인다는 방침이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 보험료율 인상 필요…"연금 지급불능 재앙 막아야"
정부는 중장기 재정전망을 하면서 70년간의 통합 장기추계(2018∼2088년) 작업을 통해 장기 급여, 수입, 재정수지를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적정 부담·적정 급여 체계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재정위험 우려가 큰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고용보험 등은 해당 부처·기관별로 보완 추계를 한 뒤 수지균형을 확보할 수 있는 적정보험료 체계, 급여 지출 효율화 방안을 수립하기로 했다.
사회보험 효율화는 결국 4대보험과 4대연금 가입자의 보험료나 부담액 인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일단 운용수익률 제고로 재정안전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해외 대체투자 확대 등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투자관리방식 선진화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 초기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공적연금의 지급불능 같은 '재앙'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연금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경우 일단 보험료율을 12~13% 수준으로 올릴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적자를 국가가 보전하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사학연금은 저출산 고령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미래에 막대한 재정 부담으로 심각한 사회갈등이 유발될 수 있으니 지속가능한 운용방안을 시급하게 도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험료율 인상을 넘어선 '개혁' 수준으로 보험·연금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바뀌더라도 논의가 지속할 수 있도록 범정부적인 사회적 합의 기구를 만들고 정확한 재정 추계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초연금은 장기적으로 없앨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을 기본으로 하되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도 제대로 정립될 수 있도록 세제유인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몇 가지 조건만 바꾸면 된다는 평면적인 접근으로는 연금문제를 풀 수 없다"며 "복잡한 사회변화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다이내믹한 접근이 필요하고 변화에 따라 제도를 계속 고쳐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roc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