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개혁·수사권 조정·공수처 설립' 논란 이젠 매듭짓자
정치적 중립·공정한 수사는 시대적 요구…묘안 머리 맞대야
민관기구 만들어 한 테이블 올리는 '패키지 논의' 등도 거론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대한민국이 헌정 사상 유례없는 5월 '장미 대선'을 치르게 된 것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 근저에는 현직 대통령과 측근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심판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목소리와 이를 바탕으로 청와대 권력과 재벌 권력을 가리지 않는 성역없는 수사, 그리고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른 사법적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와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일부 한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물밑에서 벌어진 국정 농단의 실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준엄한 사법심사의 무대에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의 전사(前史)를 되짚어본다면 정권 초기 대통령과 청와대 권력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검찰이 국가 최고 사정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 치부(恥部) 역시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새 정부 출범때마다 되풀이되는 과제이지만 차기 정부에서도 수사기관이 다시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벌써 주요의제로 오르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특정 정치 세력의 이익이 아닌 국민 인권, 사회 정의, 민주주의를 위해 복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특히 현재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은 사정기관의 대표격인 검찰의 적폐를 거론하며 검찰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큰 틀에서 우리 형사사법체계의 재편 방안도 거론되는 가운데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및 경찰 개혁, 검찰 기능을 대체해 공직비리를 수사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 논의 등이 이뤄지는 모양새다.
◇ 차기 대통령, '잘 드는 칼'의 유혹 뿌리쳐야
지난 정권에서 경찰과 검찰이 정권의 '호위무사' 역할을 한 것은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 없다.
경찰은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를 쏘며 비판의 목소리를 억눌렀다. 검찰도 정권의 치부를 눈감고 이를 지적하는 손가락을 꺾어 재판에 부쳤다.
이 같은 수사기관의 정치적 도구화는 비단 지난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으로 실행 주체만 달랐을 뿐 역대 정권마다 되풀이돼 온 일이다.
거의 모든 대통령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약속했지만, 집권 후엔 '잘 드는 칼'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검찰이 모두 행정부에 속하므로 그 수장인 대통령의 정책과 철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사정기관의 눈과 귀가 광장이 아닌 청와대를 향하며 수사권이 남용되고 이 과정에서 국민의 인권이 후퇴한 사례가 많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청와대 참모가 국정농단을 막기는 커녕 묵인하거나 협조한 정황은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됐다.
법조계와 학계는 차기 대통령에게 사정기관이 정권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움직이게 해선 안 된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막상 권력을 쥔 쪽에서 볼 때 이는 쉽지 않은 문제다. 자신이 가진 권한을 내려놓는 결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수사기관의 막강한 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며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청사진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29일 "수사기관의 정치 도구화를 막는 것은 대통령의 의지뿐 아니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대통령이 지닌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제한하거나 분산하는 방안으로는 미국식 검사장 직선제를 비롯해 검찰총장 임명 때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 수사권 조정, '영역 이기주의' 대신 '국민 인권 보장'이 우선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립 논의도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공정성 보장과 같은 견지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이는 검찰·경찰 개혁 등의 문제와도 모두 맞물린 만큼 한 테이블에 놓아야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통합적 개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검찰 수사권을 일부 축소하되 그 공백을 공수처가 메우고, 동시에 경찰은 국가경찰-자치경찰로 분할하는 식의 고차방정식 개혁안이 검토될 수 있다.
검찰의 영장 청구권을 경찰로 내려주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이 문제는 헌법과 형사소송법 등 법 개정과 함께 형사사법체계의 수정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기 정권이 경찰에 수사권이나 영장 청구권을 넘길 경우 경찰 권한 남용을 통제할 방안도 함께 모색돼야 한다. 경찰 인력이 10만명이넘고 수사 외에 정보 등 조직이 방대한 만큼 국민의 일상생활 곳곳에서 수사권 남용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경찰의 영장을 검찰이 들여다보고 제어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법률전문가가 검증함으로써 수사 단계에서 인권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게 검찰측 반론이기도 하다.
아울러 영장 청구권을 경찰이 독자적으로 행사할 경우 구속·체포·압수수색검증 등 모든 방면에서 전면적으로 시행하기보다 압수수색영장 등 일부 기능 위주로 시행한 뒤 차차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수사권 조정과 별도로 검찰의 중립성, 공정성 확보와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위한 검찰 개혁은 필수로 거론된다.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 국민의 의견을 따르는 기소대배심제, 법무부 주요직위 외부 개방처럼 민간의 개입을 늘리는 방안이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논의된다.
특히 수사권 조정은 양 기관의 이해보다는 어떻게 해야 수사권한 총량을 줄이고 국민 인권 보장이 확대되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판사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이해관계에 따른 나눠 먹기나 어정쩡한 타협이 돼선 곤란하다"며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고 더욱 확대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수처의 경우 기존 수사기관이 조직 논리에 따라 눈감은 부패를 수사하는 등 견제 효과가 크다. 공수처에 고위 공직자 수사를 맡김으로써 검찰이 제 식구 비리를 감싸거나 은폐하는 일을 막고,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수사 총량이 늘어나며 수사 대상자의 인권이 후퇴하거나 오히려 정치 세력의 '청부 수사 조직'이 될 극단적 가능성도 짚어봐야하고, 공수처 신설은 '옥상옥'을 만드는 것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수처 역시 임명권자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일부에선 검찰과 경찰의 수사 기능을 각각 떼어 '수사청'을 만드는 방안도 거론한다. 이렇게 할 경우 검찰 조직은 '수사청'과 '기소청'으로 나뉜다. 수사청 방안은 수사권에 기소권까지 가진 검찰의 권한을 분산하는 개선책으로 제시된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새로운 제도보다도 정치 검사가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인사권을 개선하고 검찰을 민주적 통제에 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새로운 제도를 얘기하기에 앞서 각 정권이 그동안 검찰 인사를 제대로 했는지, 인사를 통해 검찰을 장악해 정치 도구로 사용하려 했던 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공정한 인사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 '민관 통합 기구'서 단계적 개혁안 만들자
공수처 등을 통한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과 검찰 권한 분산은 약 18년간 논의가 이어졌지만, 현실화엔 번번이 실패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주장 역시 정권 교체기마다 고개를 들며 양 기관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국민의 손해로 이어지는 만큼 차기 정부는 수사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새로운 형사사법체계를 구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공수처법은 정치권 이견이 적어 국회내 합의에 따라서는 제도화 가능성도 예상되지만, 영장 청구권과 같은 문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해 제각각 논의가 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검경 개혁·정치 중립성 확보·기관 간 권한 조정·국민 인권 보장은 한 테이블에서 유기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민관 통합 개혁기구'를 만들어 중장기 논의와 연구를 통해 이상적인 형사사법 구조를 도출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혁기구를 법제화해 대통령 임기와 상관없이 5년∼10년 단위의 장기적·단계적 개혁안을 내놔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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